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저녁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쇼핑센터와 신세계백화점 앞 거리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휘황찬란했다. 그러나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찬 거리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어둡고 쓸쓸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바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로 꼽히는 영등포역 쪽방촌이다.
영등포 쪽방촌은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 고속 성장의 혜택이 비켜간 도시빈민 주거지역이자 1970~80년대 희망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 탈향민들의 첫 거처로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은 ‘두 얼굴’의 공간이기도 하다.
2015년 연말 매일경제는 영등포 쪽방촌에서 단순한 나눔이 아닌, 541가구 주민들과 노숙인들의 재기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천사들을 만났다. 하얀 옷의 천사인 요셉의원 이문주 원장신부와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토마스의 집’ 김종국 신부, 그리고 노숙임 쉼터를 제공하는 광야교회 임명희 담임목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쪽방촌 주거민과 노숙자들을 위해 음식, 잠자리, 의료를 제공하며 나눔을 실천한지도 벌써 20년이 남았다. 이들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간다. 내년부터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교육·교양강좌는 물론 청소년과 젊은 노숙인들이 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검정고시 학원까지 만들 계획을 세웠다.
교육을 통한 재기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도록 이영조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 교수 역시 지난 16년 간 서울대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며 도시 빈민가의 재기를 간절히 지원해온 ‘숨은 천사’다. 이 교수는 언젠가 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제자가 쪽방촌 노숙인에게 침낭을 제공했으나 다음날 그 노숙인이 안타깝게 사망한 기억을 떠올린다.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듯 그 노숙인은 침낭을 전해준 학생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단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그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꼭 쓰고자 하는 이유에는 이런 애절한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서태욱 기자 / 황순민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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