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파는 떡볶이집, 산낙지 파는 갈비집, 짜장면 파는 족발집···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런 음식점들은 최근 서울 명동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같은 가격이라면 당연히 전문점에 가서 먹겠다”며 해당 음식점을 외면한다. 질 낮은 음식을 고가에 판매하는, 관광객을 우롱하는 행위라는 목소리도 높다. 그럼에도 이런 음식점들이 정체성 모호한 메뉴로 호객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우리도 떡볶이만 팔고 싶죠. 그런데 그러다간 곧 죽겠더라고요.”
떡볶이 전문점 A식당의 주인 B씨는 다양한 메뉴를 팔게 된 이유로 턱없이 높은 임대료, 다양한 음식을 요구하는 외국인관광객, 장사 잘 되는 메뉴는 너나 할 것 없이 팔고 보는 명동의 전반적인 분위기 등을 꼽았다.
A식당 역시 처음에는 상호명에 맞게 떡볶이, 튀김, 김밥 세 가지만 팔았다. 하지만 매 달 1000만원대의 가겟세와 300만원을 웃도는 전기세가 고정적으로 나갔다. 여기에 자재비, 공과금 등 유지비용을 쏟고 나면 언제나 적자였다.
직원들 월급을 제때 챙겨주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현실적으로 가게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이들이 기댈 곳은 명동 전체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관광객이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외국인들의 요구를 맞춰주면서까지 붙잡는 궁여지책을 택했다.
B씨는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빼달라는 재료는 빼주고 좋아하는 재료를 추가해주면서 맞춤형으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계속 하다 보니 나중엔 (그들이) 메뉴에 없는 음식들까지 요구했다”고 말했다.
단 한 그릇이라도 더 팔기 위해 B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라면 메뉴에 없어도 만들어 내놨고, 외국인들은 한 식당에서 다양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B씨는 “이 중 반응이 좋은 음식들을 하나씩 메뉴에 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A식당은 떡볶이와 분식류를 제외하고 10여 가지의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메뉴를 다양하게 확장한 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올랐다. 비로소 흑자로 돌아섰고 직원들 월급도 밀리지 않고 줄 수 있게 됐다.
이는 비단 A식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명동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떡볶이를 메뉴에 추가해 팔고 있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대표 메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A식당 같은 전문점의 메뉴는 고유의 상권을 보호받지 못했다. A식당 바로 앞에는 떡볶이 노점이 줄을 서 있고, 최근엔 같은 건물 바로 위층에 떡볶이집이 입점했다.
또 다른 식당주인 C씨는 “우리도 우리의 대표 메뉴인 떡볶이 하나만 취급하고 싶지만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그들이 파는 메뉴들을 팔아보자’ 마음먹었다”고 하소연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그는 “이렇게 계속 돌고 도는 것이 명동에 생겨난 새로운 악순환”이라 덧붙였다.
C씨는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 걸 싫어한다”며 요식업자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주체성을 잃은 메뉴판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전문 분야 아닌 메뉴를 취급하다 보니 실수하는 일도 생기고 “스스로도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겟세가 끝없이 오르는 명동거리에서 ‘떡볶이’는 식당가의 기본 메뉴가 되어갔고, 그 상황을 버티기 위해 외국인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아야 했던 것”이라 재차 강조했다.
일관성이 없는 다양한 음식들을 어떻게 조리할까. B씨는 “음식 종류별로 자격증을 다 갖고 있진 않지만 전문가에게 레시피를 받아 여러 번 시도해보고 좋은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A식당을 비롯한 명동의 다수 음식점들이 다양한 메뉴로 외국인관광객들을 현혹시키지만 이러한 메뉴 다변화의 미래는 다소 불안해 보인다. 일단 마구잡이식 메뉴로 인해 ‘전문점’이라는 간판의 신뢰도가 떨어진 탓에 내국인의 발길이 예전같지 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록 정체성이 불분명한 메뉴라 해도 음식맛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가격이 보장된다면 문제될 일이 없겠으나 가격 대비 품질에 대한 외국인들의 만족도 역시 그리 높지 않은 분위기다. 만일 한국의 맛에 대한 환상이 깨진 외국인들이 더 이상 한국을 찾지 않는다면? 명동 음식점들에게 더 큰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그럼에도 여전히
[디지털뉴스국 박세연 기자 / 김수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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