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우리를 지켜준 청년이 뛰어나왔다. 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다면, 부리나케 달려왔을 것이다. 오영환 소방교(28)는 이 문장 뒤에 ‘대한민국 모든 소방관이 그러하듯이’를 써야 한다고 했다. ‘글 쓰는 소방관’ 답게, 그의 답변에는 허튼 문장이 없었다.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소방관 본연의 임무를 할 뿐이죠.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지켜내는 일 말입니다. 아프면서도 묵묵히 달려가는 소방관들과 현장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오 소방교는 틈틈이 써둔 글을 모아 ‘어느 소방관의 기도’(쌤앤파커스)라는 책을 냈다. 인세의 70%는 순직·부상 소방관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그의 책에는 처음 사람의 목숨을 구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20대 초반, 그가 해운대에서 의무소방대원으로 복무할 때의 일이다. 물에 빠진 열 살 소녀가 살기위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 무서운 완력과 삶을 향한 의지가 오늘날의 오 소방교를 만들었다.
“구조대원이라면 누구나 평생 간직할 선물이죠. 스물 한 살 때 119마크를 가슴에 달 때부터 지금까지 제 직업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무소방대원 경력까지 합치면 8년차인데요. 처음에 위험하다고 걱정하시던 어머님도 지금은 아주 자랑스러워하세요.”
오 소방교는 바다에서, 산에서,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구해왔다. 지금은 성북소방서에 3명뿐인 119 오토바이 구급대를 맡고 있다. 심정지나 중증외상 환자 신고가 들어오면 구급차의 서포트 역할로 가장 먼저 출동해야 하는 자리다. 그는 “사람을 살리고 싶어, 응급환자에 한정하고 싶어 지원한 보직”이라며 “단독으로 응급처치가 가능해야 하고, 출동 범위도 성북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환자의 특성상 희망보다 절망과 더 자주 만난다. 심정지의 경우 5분안에 출동해야 하지만, 너무 늦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오 소방교는 “보호자들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그럴 땐 저희도 피눈물이 난다. 동료들과 있을 때는 가볍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계속 생각나서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대한민국 소방관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동료들과 ‘오늘은 한 명 살리자’ 하면서 다시 힘을 낸다”며 웃었다.
오 소방교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다. 꿈꾸던 작가가 됐고, 작년 12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다. 3년 열애 끝에 결혼한 오 소방교의 아내는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선수다. 암벽등반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클라이밍계의 김연아’라고 소개될 만큼 독보적인 기량을 자랑한다. 오 소방교가 산악구조대 시절, 자기계발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다니던 암장에서 선생님 친구였던 김 선수를 소개받았다. 올 2월에는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를 졸업하고 학사모도 쓸 예정이다. 소방관이 되겠다며 대학도 그만둔 그가, 하고싶은 공부를 하니 너무 행복하단다. 언젠가 대학원 진학도 생각하고 있다.
“소방관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순직이나 사고 때만 반짝하는 관심은 사양이에요. 소방관 불쌍하다, 가난하다는 동정 말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나 언론도 소방관들이 왜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지, 냉철하게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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