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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가져다가 모바일 공간에서 다른 사람 행세를 했더라도 명예훼손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27일 법원에 따르면 A(26·여)씨는 2014년 1월 자신의 스마트폰에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깔았습니다. 하루 16명의 이성을 소개시켜준다고 해 100만명 넘게 가입했다는 유명 어플이었습니다.
A씨의 자기소개는 가짜였습니다. 나이·지역·직업·키와 프로필 사진은 B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가져와 그대로 옮겼습니다. B씨는 2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의 새 애인이었습니다. 앱을 깔 때부터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을 속셈이었습니다.
A씨는 이틀 동안 프로필을 보고 연락해온 남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남자들은 A씨가 자기 것인 양 알려준 B씨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도 걸었습니다.
타인 행세가 들통난 A씨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1·2·3심 모두 A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의 '타인 사칭'이 정통망법의 '공공연하게 거짓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정통망법 제70조 제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습니다.
1심은 "B씨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자신의 것처럼 알려준 사실은 인정되지만 인적사항을 도용한 것일 뿐 어떤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B씨가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정이 있긴 하지만 명예가 훼손됐다고 보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최근 A씨에게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현행법상 남을 사칭해 재산상 이익을 얻는 등 2차적 피해가 발생해야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남을 사칭하는 행위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정통망법 개정안이 지난해 7월 발의됐지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은 남의 이름이나 사진·영상을 사칭하면 1년 이하의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정보통신망에서 타인 사칭은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인격권 침해이고 사이버 공간에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여러 주와 캐나다에서는 이런 이유로 타인 사칭 벌칙조항을 신설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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