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맥은 원래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죠”
홍대 메인 상권을 살짝 벗어난 합정동 골목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북카페 비플러스(B+)가 있다. ‘치고 빠지는’ 홍대 상권의 흔한 점포들과 달리 비플러스는 어느덧 7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간 다실-야간 살롱-상시 서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비플러스는 소규모 북카페이면서도 다양한 주류를 제공하는 점이 이색적이다. 한 잔에 4500원짜리 생맥주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병맥주와 위스키, 와인까지. 메뉴판 가득 채운 술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한다.
비플러스 대표 김진아 씨는 “책과 술은 많이 닮았다”며 이곳에서만큼은 일찌감치 일상이 된 ‘책맥’의 가치를 소개했다.
“책 읽는 행위 자체가 워낙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커피 마시며 책 읽는 거나 맥주 마시며 읽는 거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근 트렌드로 ‘책맥’이 떠오른다고 하니 저희로선 흥미롭고 재미있죠.”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열풍에 한참 앞서 비플러스에서는 이미 2010년 오픈 당시부터 ‘책맥’이 가능했다. ‘책맥’이라는 신조어가 비플러스에겐 그저 일상이고,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발견인 셈이다. 김씨는 “그래도 책맥 열풍 덕분에 묻어가면 유명해지고 좋지 않겠냐”며 웃었다.
북카페라서 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비플러스는 ‘책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읽는 것’이란 편견에 정면도전했다. 대낮에도 한쪽에선 테이블에 맥주잔을 놓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머리를 파묻고 책에 몰두하고 있다. 스피커에선 다양한 분위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김씨는 “이곳에선 책을 읽고 싶으면 혼자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모르는 사람과도 수다를 떨고, 노래를 하고 싶으면 기타를 치고 공연을 할 수도 있다”며 “비플러스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고,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없으며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곳”이라 자부했다.
책장 가득 빼곡하게 들어찬 수천 권의 책은 대부분 김씨가 출판업에 종사할 때 모은 책들이지만 신간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북카페들이 특정 도서 장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비플러스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책을 꺼내볼 수 있다.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규모 북카페들 속 비플러스만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김씨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 도래 이후 책이 설 자리가 좁아진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일에만 몰두하면 책에 미래는 없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꿈꾸는 비플러스의 미래는 “홍대 문화공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이 만연한 홍대 상권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며 “그 지역의 독특한 개성과 ‘일상 속 책’이라는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한 번도 안 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본 사람은 없다’는, 비플러스의 매력은 ‘중독성’에 있다. 누구라도 비플러스에 들렀다 가면 술 한 잔을 하며 책을 읽는 게 한 번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경기도 일산 백석동의 한 작은 책방. 독특한 간판이 눈에 띈다. 미스터버티고. 삶을 ‘버티고’ 있는 많은 이들처럼 묵묵히 버티고 있단 느낌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든다.
‘버티고’ 책방지기 신현훈 씨는 최근 일어난 ‘책맥’ 붐에 앞서 직접 제작한 책 띠지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미스터버티고만의 시선이 담긴 독특한 띠지에 대한 반응이 뜨근하다. 신씨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인데 반응이 좋다”며 “크게 부담 느끼는 작업은 아니지만 책의 매력을 좀 더 보여주기 위해 나부터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미스터버티고는 아직까진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책방이지만 대형서점보다 책방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다. 북카페와 책방 사이 그 어딘가에 정체성을 두고 있지만 요즘 트렌드인 ‘책맥’의 대표주자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어느 작은 책방에서 맥주를 판다는 기사를 접하고 재미있겠다 싶어 버티고에서도 맥주를 팔고 있다”는 신씨는 “개인적으로 술을 많이 사랑하는 편이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술과 책의 조합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씨는 “헤밍웨이를 비롯해 많은 문호들이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왔을 때 책을 쓰셨다고 하더라”며 “적당한 술은 텍스트에 대한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해주기도 한다”고 ‘책맥’의 궁합을 언급했다.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먹기) 등 1인 소비 패턴이 뜨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실제로 미스터버티고에서는 혼자 맥주 한 잔 하며 책 보는 손님이나 저녁에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지나가던 길에 들르는 손님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크림생맥주 330cc 한 잔에 28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아직은 “겨우 월세만 내는 수준”의 매출이지만 미스터버티고를 버티게 하는 힘은 맥주가 아닌, 결국은 ‘책’과 ‘사람’이다. 신씨는 “정기적으로 책 사러 오시는 분들이 있다”며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참고로 신씨가 추천한 ‘한잔 하며 보기 좋은 책’은 다음과 같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설운 서른’, ‘위대한 개츠비’. 궁합이 어떤지, 이번 주말 버티고에서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맥’ 붐에 찬물 끼얹기는 아닙니다만…
소위 ‘책맥’ 붐과 더불어 최근 들어 동네책방들도 전례 없이 ‘뜨고’ 있다. 비플러스나 미스터버티고 외에 연희동의 ‘책바’나 대흥동의 ‘퇴근길 책한잔’, 상암동 ‘북바이북’, 창천동 ‘시바 펍 앤 북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혼자 혹은 누군가와 같이 책을 보러 가서 가벼운 술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책맥’ 열풍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책 자체가 어쩌다 즐기는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이들은 왠지 모르게 특별해보이는 ‘책맥’ 트렌드보단, 그리 특별하지만은 않은 ‘책맥’의 존재 가치에 보
특히 김씨는 “책맥이 유행이라면, 한두번 가다 말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커피와 함께든 맥주와 함께든 책 읽는 행위가 좀 더 일상화된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박세연 기자 · 김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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