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옥시 전 대표 “검찰서 모든 것 이야기하겠다” 영어로 되풀이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이하 옥시)의 미국인 임원 존 리 전 대표(48·현 구글코리아 사장)가 23일 검찰에 출석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제조사 옥시의 외국인 대표가 소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영국 본사에 인수된 이후인 2005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옥시를 경영했던 존 리 전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리 전 대표는 이날 오후 1시 30분 검찰에 모습을 드러낸 뒤 한국말로 또박또박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고 심경을 밝혔다.
부작용 민원을 보고 받았냐, 유해성을 미리 알고 있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영어로 “검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기도와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리 전 대표는 신현우 전 대표(68·구속)의 뒤를 이어 5년간 옥시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인물로 가슴 통증, 호흡 곤란 등 제품 부작용을 호소하는 민원을 보고 받고도 판매를 강행해 피해자들을 숨지거나 다치게 했다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고 있다. 옥시에서 미디어고객팀 부장을 맡고 있는 김 모씨도 함께 소환됐다.
현장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시민단체 관계자 10여명이 나와 리 전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방치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의 발언 도중 일부 관계자가 옷을 잡아당기고 밀치는 등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리 전 대표 재임기간이 가습기 살균제 판매고가 가장 많았던 시기인 만큼 제때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피해 규모를 키웠다고 보고, 판매를 승인한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이 중대하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환경부 관계자 18명을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사람들을 사망과 상해에 이르게 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강현욱·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 국장·과장 등 피고발인들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유해물질 관리를 담당한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성분을 승인할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고, 용도 변경이 있었고 과학적 유해성이 확인됐는데도 추가적인 독성 평가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한 혐의로 고발됐다.
한편 검찰은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인명 피해를 낸 롯데마트와 PB제품 출시 단계에서 자문을 맡았던 미국계 컨설팅업체 D사 양측 모두에 안전성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두 업체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어 대질 조사도 검토 중이다.
[김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