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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금 50돈으로 특별제작된 699회 1등 당첨자 용지 |
“금고를 하나 사야겠어요. 밤마다 저만 꺼내보려면요.”
선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박씨는 선물로 받은 황금로또를 매일 밤 홀로 꺼내보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로또를 한 손에 꼭 쥔 채 “남에게 (황금로또를) 자랑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최고”라고 했다.
박씨가 로또 1등 당첨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가 모시고 사는 부모님과 10대 두 아들 녀석들 뿐이다. 평범한 아빠로 살아왔던 그는 10여년 전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3억원의 빚을 진 이후부터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내와 이혼했고, 혼자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3억원의 빚은 어느새 4억원이 넘을 정도로 불어났다. 이혼 당시 5살, 2살이었던 두 아들의 양육을 맡은 그는 눈 앞이 깜깜했다. 도저히 홀로 자녀를 키울 자신이 없어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 고령의 어머니에게 어린 손자들의 양육을 맡기는 게 죄송했지만 생활고를 해소하기 위해 트럭 운전을 해야만해 어쩔 수 없었다.
“트럭 운전이라는 게 근무 시간이 일정한 게 아니에요. 공장 등 현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제 때 배달해야하기 때문에 새벽 1~2시에도 운전대를 잡아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도착 시간을 맞추려면 과속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많았어요.”
수억원의 빚을 지기 전 그는 제빵사였다.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만들던 그는 어떻게든 빚을 갚고, 두 자녀를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밀가루 대신 트럭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일하는 환경이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 등이 판이하게 달라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제빵 일을 하던 때와는 정말 180도 달랐어요. 건설현장에서 주로 일하다보니 말투나 행동이 거친 사람이 많았고, 대화에 낄 수조차 없었죠.”
일이 힘들수록 그는 오로지 빚을 갚는 것을 목표로 내달렸다. 일이 많을 때는 전국 각지로 하루 8개의 배달 일을 하느라 잠자는 시간 빼고 운전대를 놓아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쉽사리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경기에 공장까지 파업을 하자 그의 경제적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트럭 운전을 하는 때보다 트럭을 놀리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부모님과 두 아들 녀석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막막했어요. 애들 학원이라도 보내고, 맛있는 것을 사주려면 내가 돈을 벌어야하는데, 부모님 집까지 담보로 잡아 산 트럭이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인생의 수렁에 또 한번 빠진 그 순간 만난 로또. 매주 2만원어치를 사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앞서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인생의 희망을 꿈꿨다. 28개월간 그렇게 매주 로또 당첨을 꿈꿨고, 지난 4월 드디어 1등에 뽑혔다.
“1등 당첨 사실을 접한 후 손이 다 부들부들 떨렸어요. 마침 아이들과 외출 중이었는데 잠시 자리를 옮겨 혼자 속으로 ‘만세’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몰라요. 훔쳐갈 것도 없는 집이어서 평소 문을 안 잠그고 외출하는데 로또 1등이 당첨된 날은 하필 그 날 강도가 들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1등 당첨금 19억원 중 실수령액 13억원 가량을 받은 박씨는 일단 4억원의 돈을 빚을 갚는데 썼다. 그리고 항상 빚진 마음인 부모님께는 그 동안 못한 병원 치료를 다 해드리고 차를 한 대 뽑아드렸다. 두 아들이 평소 갖고 싶어했던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사준 것은 물론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SUV 중고차량을 한 대 샀다. 물론 이마저도 부모님, 두 아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는 “쪼들리는 살림에 기가 죽고, 아빠 눈치까지 봤던 애들 표정이 밝아져 너무 기쁘다”며 “그런 손주들의 변화된 모습에 부모님 걱정 역시 덜어드린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도 트럭 운전 일을 하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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