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엔 막걸리에 부침개?…과학적 이유 있다
↑ 막걸리 부침개/사진=연합뉴스 |
충북대 정문 앞에 자리 잡은 토속음식점 삼미(三味). 투박하고 아담한 공간에서 고소한 해물파전과 걸쭉한 막걸리를 즐길 수 있어 주머니 얇은 대학생과 직장인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평소에도 손님 많기로 소문난 맛집이지만,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문턱이 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주인 이인옥(67·여)씨는 "다른 음식점은 비가 오면 공치기 일쑤라지만, 우리는 장마철이 대목"이라며 "요즘에는 스무 개의 테이블이 두세 바퀴 돌아야 하루 영업이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해물파전과 닭갈비입니다.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닭갈비에 소주가 주로 나가고, 비 오거나 궂은 날은 해물파전에 막걸리가 단연 인기입니다.
이씨는 "비가 내린 어제는 50팀 넘게 다녀갔는데, 대부분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며 "빗소리가 부침개 부치는 소리와 비슷해 손님을 몰고 오는 것 같다"고 그럴싸한 해석을 내놨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기분까지 눅눅해진다. 정신을 번쩍 깨우는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과 고소한 부침개가 절로 떠오릅니다.
장마철 마음 통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나누는 막걸리와 뜨끈뜨끈한 부침개는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구수한 칼국수나 수제비도 입맛 다시게 만드는 메뉴입니다.
그렇다면, 비 올 때면 왜 이런 음식이 떠오를까. 유독 밀가루 음식이 당기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 밀가루 성분, 처진 기분 푸는 효과
대전대 한방병원 손창규(한방내과) 교수는 그 이유를 밀가루 성분에서 찾습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짜증이 나면서 인체의 혈당이 떨어지는 데, 혈당치를 높여주는 식품으로 전분이 가득 든 밀가루 요리가 제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는 "밀가루는 몸에 열이 오르거나 갈증 나는 것을 해소해 주기 때문에 처진 기분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며 "해물이나 파 등을 첨가해 단백질과 미네랄 성분을 보충하고, 매운 고추나 파 등을 썰어 넣어 입맛을 돋구는 것도 기분 전환을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글거리는 튀김 소리와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노릇노릇하게 익는 부침개 성분이 오감을 자극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울한 기분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비 오는 날 막걸리와 부침개가 떠오르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영동대 지영순(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는 "단백질의 주성분인 아미노산과 비타민B는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을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라며 "이런 성분이 많이 든 밀가루는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된다"고 말했습니다.
밀에 들어있는 아미노산과 비타민 B1·B2 성분이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일시적으로 기분을 푸는 효과를 낸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뜨끈한 국물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입니다.
부침개에 들어가는 부추·파·배추 등도 우리 몸의 혈액순환을 좋게 해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 밀가루 소화 돕는 막걸리…찰떡궁합
막걸리는 찹쌀과 멥쌀, 밀가루 등을 찌어낸 뒤 누룩·물과 섞여 발효시킨 우리나라 고유의 술입니다.
단백질을 비롯해 비타민·이노시톨·콜린 등이 풍부하고, 새큼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들어있어 갈증을 완화합니다. 신진대사를 돕는 역할도 합니다.
그렇다면 막걸리와 부침개는 왜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는 걸까. 둘의 찰떡궁합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밀가루는 기분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반면 성질이 차가워서 많이 먹을 경우 소화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보통 밀가루 음식을 먹은 뒤 속이 더부룩해지는 이유입니다.
이때 막걸리에 풍부한 식이섬유와 유산균은 떨어진 소화기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막걸리 1병(750㎖)에는 보통 700억∼800억개의 유산균이 들어있습니다. 요구르트(65㎖) 100∼120병과 맞먹습니다.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과 정석태 박사는 "막걸리는 유산균 외에도 비타민, 아미노산, 미네랄 등의 미량 영양소가 풍부한 우수 식품"이라며 "이들 성분이 밀가루 전분의 분해를 돕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부침개는 열량이 매우 높지만, 막걸리와 함께 먹게 되면 포만감이 쉽게 느껴진다"며 "과다한 칼로리 섭취를 막는다는 점에서도 두 음식은 궁합이 척척 맞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막걸리와 부침개가 장마 음식이 된 데는 조상들의 농경문화가 한몫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던 시절, 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밀가루 전을 부쳐 허기를 달래면서 막걸리를 즐긴 게 유래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옥천 향토전시관의 전순표 관장은 "막걸리는 조상들이 농사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즐기던 농주"라며 "당시에는 고소한 부침개가 최고의 안줏거리였고, 비 오는 날이면 으레 집집 마다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와 곁들여 먹고는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조상들이 즐기던 막걸리와 부침개 맛이 후손들이 유전자에 박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실제로 비 오는 날 막걸리와 부침개를 얼마나 많이 먹을까.
이마트는 장마가 시작된 지난 주말(2∼3일) 전국 매장의 막걸리와 밀가루 매출이 날씨가 화창했던 2주 전 주말(6월 18∼19일)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막걸리는 2%, 밀가루와 부침가루는 53%와 63%씩 판매량이 치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뜨끈한 부침개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즐기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출은 판촉행사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달라지지만, 이번 통계를 볼 때 막걸리와 밀가루 매출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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