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10미터 밖인데요? 10미터 밖이면 피워도 되는 거 아닌가요?”
지난 5월 서울시가 시내 모든 지하철역 출입구의 10미터 이내 지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웃지못할 신풍속도가 생기고 있다. 지금은 단속기간(1~8월 계도기간)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는 ‘배째라족’, 10미터 경계 바로 뒤에서 담배를 피우는 ‘얌체족’, 금연구역을 피해 후미진 골목 어귀를 찾는 ‘은둔족’들이 나타나는 등 지하철역 출구 금연 정책을 둘러싼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지난 6일 오전 종로3가역 출구 앞.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 앞에서 떳떳하게 담배를 피고있던 한 시민에 서울시 금연 계도요원이 다가가 “자리를 이동해 달라”고 요구하자 대뜸 화부터 냈다. 이 시민은 “내 돈 내고 내가 피우는데 무슨 상관이냐. 단속해도 계속 피울 것”이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출구 앞 금연을 계도하고 있던 나수경 주무관은 “저런 분들을 만나면 대책이 없다”며 “9월부터는 과태료 부과 등 실제 단속이 시작되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청량리역 5번 출구 앞에서 홍보·계도 활동을 하고있던 김은희 주무관은 “서울역과 청량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역에서는 여전히 하루에도 수백 명씩 출구 앞에서 흡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과태료(10만원)가 부과되지 않는 계도기간인 점을 이들 ‘배째라족’들이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막무가내로 지하철역 출구에서 흠연하지는 않지만 ‘10미터’ 규정을 역이용하는 ‘얌체족’들도 상당수 목격됐다.
이들은 지하철역 출입구 10미터 밖이면 단속 대상이 아닌 점을 근거로 출구 주변에서 당당하게 흡연을 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구로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 앞 바닥에 붙여져 있는 금연표시 밖에는 수십 명이 일렬로 동시에 흡연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출구 앞 금연구역을 피해 주변 골목 등 후미진 곳을 찾아 담배를 입에 무는 시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 주무관은 “흡연자들이 제복을 입은 우리를 보고 골목이나 후미진 곳에 가서 피는 경우가 꽤 많이 생겨났다”며 “9월에 단속이 시작되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은둔족’과 ‘얌체족’들이 늘어나면서 지하철역 출구 주변 상인들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풍선효과처럼 주변 상가들로 흡연족이 모여들면서 담배연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거나 꽁초 등 쓰레기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건대입구역 1번 출구 옆 커피숍에서 아프바이트를 하는 정모 씨(25)는 “이제는 창문을 열어놓기가 힘들 정도”라며 “건물 관리 아저씨가 하루종일 호루라기를 불며 흡연자들을 쫓아내지만 금세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에 나타나 담배를 피운다”고 하소연했다.
청량리역 5번 출구 앞에서 작은 의류점을 운영하는 정용우 씨(71)는 “지하철역 출구 앞 금연 정책이 완전히 무용지물”이라며 “더욱 엄격히 계도와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로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 앞 공영주차장 관제소 직원 역시 “월요일 아침마다 주말동안 주차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는데 100ℓ 종량제 봉투를 가득 채운다”며 “주차장내 금연 표시를 아무리 많이 붙여놔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단속이 들어가는 9월부터는 이같은 혼란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특히 ‘10미터 이내’라는 기준이 모호해 단속에 걸리는 흡연자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서울시는 염려하고 있다.
한 계도요원은 “출구 옆에 상가건
시 관계자는 “금연구역을 살짝 벗어난 흡연자들의 계도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예산과 도시미관상 10미터 둘레에 정확한 경계선을 표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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