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최악가뭄' 속 타는 農心…"한 달 넘게 비 안 와"

↑ 가뭄/사진=연합뉴스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주도완(47)씨는 요즘 산비탈 고추밭에 물을 길어 나르느라고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육신이 고단한 건 그래도 참을만 합니다. 폭염과 가뭄에 황량해지는 들판을 보노라면 속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최선을 다해보지만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몸에서 힘이 빠집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 한 달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혹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수확기를 맞은 고추밭이 바싹바싹 타들어 갑니다. 하루라도 생명수를 공급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20여일 전부터 인근 저수지 물을 고추밭으로 퍼 나르기 시작한 주씨는 최근 스프링클러까지 설치해 가뭄과 싸우고 있습니다.

주씨는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대형 물통을 밭둑에 놔두고 하루 10번 이상 물을 채워놓지만, 해갈은 엄두도 못 낸다"며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는 스프링클러의 물줄기가 땅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말라버린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지난해 500㎏을 웃돌던 고추 수확량도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그는 "고추가 채 자라지 못해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상태에서 그대로 익거나 꼭지가 말라 떨어지는 등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며칠 더 지켜본 뒤 상황이 악화되면 밭을 갈아엎고 김장 배추를 파종하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푸념했습니다.

◇ 들깨 모종 새까맣게 마르고, 과일 성장도 멎어

인근에 있는 그의 들깨밭 상황은 더욱 심각랍니다.

지난달 옥수수를 수확한 뒤 심은 들깨 모종이 불볕더위에 새까맣게 말라죽거나 가까스로 살아 남은 것도 푸석거리는 흙 속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해 듬성듬성 이 빠진 듯한 모습입니다.

주씨는 "예년 같으면 어른 무릎 높이로 자랐어야 할 들깨가 아직 모종 상태에 머물고 있다"며 "20∼30%는 이미 말라죽어 지금의 상태라면 수확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숨지었습니다.

인근에서 1만㎡의 배 농사를 짓는 어효경(54)씨도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 속에 가뭄과 사투를 벌이는 중입니다.

어씨는 매일 경운기로 물을 길어다가 배나무 사이의 밭고랑에 물을 흘려주고 있느라 진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불볕더위에 데이고 가뭄에 목마른 배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몸살이 심한 상태입니다.

그의 배는 해마다 추석 대목에 맞춰 출하됐지만, 올해는 수확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어씨는 "추석이 다른 해보다 이르기도 하지만, 이맘때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야 할 배가 혹독한 날씨 탓에 테니스공만하게 자란데 불과하다"며 "올해 추석 출하는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찜통더위 속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으로 농촌 들녘이 시름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수리시설이 잘 갖춰진 논은 덜 하지만, 과일을 비롯해 콩이나 깨, 고추 등 밭작물은 폭염 속에 말라죽고 성장이 멎는 등 피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장마철 집중 강수 뒤 '마른 여름'…저수율도 급락

올해 들어 충북지역에 내린 비는 739.8㎜로 지난해(498.6)보다는 많지만, 평년 865.2㎜의 85.5%에 불과합니다.

이 중 절반 가까운 350㎜가 장마철 집중됐고, 이후에는 한 달 넘게 쇠조차 녹일 듯한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국지적으로 2.5∼32㎜의 소나기가 내린 곳도 있지만, 비 구경 못한 곳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도내 농업용 저수지 762곳의 평균 저수율도 73.5%로 평년(80%)보다 6.5%포인트 내려앉았습니다.

장마 직후인 한 달 전 저수율은 86%였습니다.

도 관계자는 "장맛비가 적은 양이 아니었는데도, 한 달 넘게 펄펄 끓는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농작물이 메마르고 저수율도 급격히 내려앉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폭염과 가뭄이 겹치면서 과일이 열해(熱害)를 입는 등 농작물 피해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과일도 강한 직사광에 오래 노출되면 화상을 입는다. 햇볕 데임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일소(日燒) 현상입니다.

충주지역에서는 이른 추석에 대비해 씌웠던 봉지를 일찌감치 벗겨내거나 잎을 솎은 사과밭에 이 같은 피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격 출하되기 시작한 영동 포도 역시 잎에 수분을 빼앗겨 알이 오그라들거나 점무늬가 박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화기를 앞둔 콩은 꽃이 시들고 갓 달린 꼬투리가 떨어지는 피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김장 채소도 활착률이 떨어집니다.

충북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폭염과 가뭄으로부터 밭작물을 보호하려면 카올린 또는 탄산칼슘을 살포하고, 부직포나 비닐 등을 덮어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화상을 입은 과일은 2차 병해로 이어지지 않게 신속히 제거해 청결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청주기상지청은 당분간 비 소식 없이 산발적인 소나기 정도만 내리겠다고 예보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