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기지권, 관습법상 물권 인정?…남의 땅에 묘지 만들 수 있나
↑ 분묘기지권/사진=연합뉴스 |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묘지를 합법적으로 점유·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습법상 권리인 '분묘기지권'의 폐지를 두고 찬반 양측이 대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서초동 청사 대법정에서 강원도 원주일대 임야 소유자인 A씨가 이 임야에 분묘를 설치한 B씨 등을 상대로 낸 분묘철거소송 상고심의 공개변론을 열고 분묘기지권 인정에 대한양 당사자 측 참고인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분묘기지권은 ▲ 땅 소유자의 허락을 받아 묘지를 설치한 경우와 ▲ 자신의 땅에 묘지를 설치한 후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서 묘지 이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 ▲ 남의 땅에 묘지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 공연하게 점유해 사용한 경우에 인정됩니다.
이번 재판에서 세 번째 유형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문제가 됐습니다.
우리 법원은 1996년 대법원이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 유사의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다"고 판단한 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해오고 있습니다.
공개변론에서는 우선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라는 관습이 우리 역사에 존재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관습이 존재하고 그 관습을 법률로 인정하려는 국민의 법적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나선 오시영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역사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분묘분쟁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시대에도 취득시효라는 개념이 없었다"며 "분묘방법에 대한 인식 변화, 매장 선호도에 대한 감소 등을 고려해 볼 때 현재에도 분묘기지권의 관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피고측 참고인으로 나선 이진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조선고등법원 1927년 3월 8일 '타인의 토지에 그 승낙을 얻지 않고 분묘를 설치한 자라 하더라도 20년 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 때에는 시효에 의해 타인의 토지에 대해 지상권에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하고, 증명 또는 등기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라도 이를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조선의 관습이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2001년 시행된 개정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으로 분묘기지권을 더 이상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개정 장사법은 묘지의 설치기간을 기본 15년으로 규정하고 3번에 걸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 최장 60년간 분묘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허락 없이 묘지를 설치한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의 사용권이나 묘지 보존을 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후 장사법은 한차례 개정을 통해 묘지의 기본 설치기간을 30년으로 정하고 1회에 한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개정 장사법은 '분묘의 연고자는 당해 토지 소유자,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에 대하여 토지 사용권 기타 분묘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해 명문으로 분묘기지권의 성립을 부정하고 있다"며 "이 조항에 의해 개정 장사법 시행일 이후부터는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 교수는 "개정 장사법은 분묘기지권을 폐지하는 법률이 아니라 단지 분묘설치와 그 제한, 설치기간의 제한을 목적하는 법률"이라며 "사설묘지, 특히 개인묘지의 법률문제를 느슨하게 규율한 개정 장사법의 입법태도에서 사설묘지에만 해당하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려는 입법자의 의사가 추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집중 심리를 진행해 조만간 분묘기지권 인정여부에 대한 입장을 정해 선고할 방침입니다.
A씨는 2011년 자신 소유의 임야에 B씨 등이 무단으로 6기의 묘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며
, 2심은 문제가 된 6기의 분묘 중 5기는 20년 이상 B씨 등이 점유해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했으므로 그대로 두고, 나머지 1기는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한 판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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