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밤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관광버스 화재로 승객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난 가운데 사고를 낸 운전기사가 음주·무면허 운전 등 교통운전 관련 전과가 3건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영상(https://youtu.be/RKRD2rhCt3w)
생명을 담보로 운전하는 버스 기사 채용과 관리가 허술해 대형버스가 사람 잡는 ‘도로 위 흉기’가 된 셈이다. 또 사고 발생 지점은 도로 확장공사로 차선 폭이 좁아 평소에 운전자 사고위험이 높다는 민원이 집중됐던 구간으로 확인됐다. 결국 운전부주의와 도로안전 관리 부실 등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는 얘기다.
14일 오전 울산 울주경찰서는 브리핑을 갖고 태화관광 소속 버스운전자 이모 씨(48)는 1988년 운전면허 취득 이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행정처분 9건,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3건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음주와 무면허 운전도 포함돼 있으며 사망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는 2000년부터 울산 태화관광에 운전기사로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사업자인 태화관광이 교통법 위반 전과가 있는 이씨를 운전기사로 채용하는 과정에 규정 위반 등 문제는 없었는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제공한 CCTV상의 사고 영상을 보면 관광버스는 비상등을 켠 채 1차로를 달리다 추월을 위해 2차로로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면서 도로 옆 가드레일과 충돌했다. 그 충격으로 차량 후면에 불이 붙은 후 1분만에 ‘펑, 펑’ 폭발음을 내면서 차량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었다. 관광버스를 뒤따르다가 사고 현장을 보고 119에 신고한 고속버스 기사 정모(46)씨는 “관광버스에서 승객 몇 명이 울면서 빠져나온 후 ‘펑’, ‘펑’ 소리가 나면서 순식간에 버스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버스 앞뒤에 탑승한 승객의 경우, 가드레일에 막혀 차량문이 열리지 않자 유리창을 깨고 나갔지만 중간에 있다가 차량충돌 충격과 연기흡입으로 기절한 승객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는 “타이어 펑크로 사고가 났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경찰은 졸음운전, 차체 결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고 차량은 올해 초 출고된 47인승 유니버스로 주행거리는 6만8000㎞이다. 태화관광측은 보통 10만㎞ 운행시 타이어를 교체한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불에 탄 블랙박스를 복구 중인 가운데 감식 결과가 나오면 확실한 원인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안전 운행을 간과한 무리한 도로 확장공사가 사고를 유발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사고가 난 지점은 도로 확장공사로 차선 폭이 좁아져 운전자들로부터 사고 위험이 높다는 민원이 집중됐던 구간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언양~영천(55.03㎞) 구간을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하면서 1개 차선 폭을 법정 기준치인 3.6m에서 3.5m로 0.1m줄였다. 4개 차선임을 감안하면 총 0.4m가 줄어든 것이다.
더욱이 갓길도 폭 3m에서 0.6m로 줄었고, 확장 구간 중앙선과 도로 옆에는 높이 1.2m 가드레일이 설치돼 운전하기 힘든 구간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도로공사는 사고 위험이 높아 제한속도를 시속 100㎞에서 80㎞로 낮췄으나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어 이를 지키는 차량은 거의 없다.
울산에 거주하는 한 운전자(41)는 “도로 폭이 좁아 대형버스나 화물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너무 아슬아슬해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며 “이번 사고를 보면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버스에는 울산의 석유화학업체 한화케미컬 퇴직자 부부 등 20여명이 탑승 중이었다. 사고 사망자 중에는 부부 3쌍은 물론 일가족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대차 퇴직자인 진모 씨(72) 부부는 한화케미칼 퇴직자인 친동생(61) 부부와 모처럼 중국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로 진씨 부부와 친동생 부인 서모 씨(57)가 숨졌다.
아비규환의 참사현장이었지만 화마속에서 부상을 무릅쓰고 버스에서 부상자들의 탈출을 도운 의인들의 활약도 있었다. 경찰과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직후 불이 붙은 버스에서 겨우 벗어나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부상자들을 한 아반떼 운전자가 자신의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옮겼다. 해당 승용차엔 발목이 완전히 으스러진 중상자도 있었다. 인근 지역병원에 도착한 운전자는 응급실 직원들을 불러 환자들을 인계했다. 해당 병원측은 운전자가 자신을 ‘교사’라고만 밝힌 뒤 돌아갔다고 말했다.
현재 시신은 서울산 보람병원과 좋은삼정병원에 안치돼
[울산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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