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 유효기간을 이틀 남겨둔 23일 경찰이 갑작스레 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하다 유족측 반발로 무산됐다. 경찰은 기존 ‘강제집행은 없다’고 천명했던 경찰은 이날 돌연 입장을 바꿔 수백명의 경찰병력을 이끌고, 서울대병원을 찾았으나 결국 유족측의 반대로 3시간만에 철수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이날 종로경찰서는 오전 10시께 백남기투쟁본부 측에 강제집행을 통보하고, 백씨 시신이 안치돼있는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진입했다. 백씨가 지난달 25일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지 29일째이며, 경찰이 지난달 28일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부검영장 집행 시한(25일) 이틀 전이다.
하지만 투쟁본부측과 시민 등 400여명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경찰병력을 몸으로 막으며 경찰의 강제집행에 강력 반발했다. 이들은 스크럼을 짜고 몸에 쇠사슬을 이어 묶은 채 경찰에 강하게 저항했다. 백씨 시신이 안치돼있는 영안실로 가는 길목에는 장례식장 내부 집기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이들은 “살인경찰 물러나라”고 구호를 외치며 부검영장 강제집행 결사반대 의지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의원과 정재호 의원, 정의당 유소하 의원 등도 투쟁본부측에 합류했다. 투쟁본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영장 강제집행 소식을 전파하면서 서울대병원으로 집결해 달라고 각계에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은 만일의 충돌을 대비해 800여명의 경찰병력을 인근에 배치했다.
강제집행 의사를 밝히고 서울대병원을 찾은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측과 대화 후 영장을 집할 계획”이라며 기존 강제집행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잠시 협의 장소를 놓고 의견충돌이 일어난 가운데 경찰은 결국 ‘부겸영장 전문공개’를 부검 협의 조건으로 내세운 유족측의 입장만 재확인했다.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백씨 부검영장에 따르면 경찰은 유족측의 동의를 거쳐 영장을 집행하도록 돼있다. 이날 홍 서장은 백씨의 유족을 직접 만나려 했으나 ‘부검을 전제조건으로 한 협의는 안하겠다’는 유족측 입장만 법률대리인을 통해 재차 전달받는 데 그쳤다.
양측의 의견이 이전과 전혀 다름없이 평행선을 달리던 중 경찰은 결국 영장 집행계획을 취소했다. 홍 서장은 오후 1시15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서 “유족과 직접 만나서 협의하려고 했으나 오늘은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들었다”며 “유족의 입장을 존중해 오늘은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강제집행 의사를 밝힌 지 약 3시간만이다. 차후 집행 여부에 대해서 홍 서장은 “논의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백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 집행시한은 오는 25일이다.
그 동안 유족측과 협의를 통해 부검 일정을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경찰이 이날 오전 돌연 부검영장 강제 집행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은 부검영장 집행시한인 오는 25일까지 영장 집행에 실패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경찰 책임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만료일까지 부검영장 집행에 실패하면 경찰은 경찰 법 집행 의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날 강제 집행은 이런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경찰은 강제 집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함으로써 ‘최대한 노력했지만 유족측의 반대로 법 집행을 못한 것’이라는 법 집행 실패의 명분을 만들었다. 추후 부검영장 집행 실패의 원인을 백남기투쟁본부 측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전날 한 방송사가 ‘경찰 살수차의 물대포가 강화유리를 깰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경찰이 강제 집행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부검영장 강제 집행을 시도했던 것과 특정 방송사의 방송 내용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백씨 사망 나흘 뒤인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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