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의 수업. 한 학생이 기말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자 담당 교수가 ‘친절하게도’ 직접 관련 자료를 첨부해 학생이 제출한 것처럼 꾸몄다. 이 학생은 다른 수업에선 욕설과 비속어가 들어간 부실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도 정상적으로 학점을 받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2014년 가을 이 학교의 입학시험 면접장. 학생은 면접 위원들 앞 테이블 위에 얼마전 국제대회에서 딴 금메달을 올려놓고 당당하게 물었다. “금메달을 보여드려도 되나요?” 면접장에는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지만 어쩐 일인지 학교측은 지참을 허용해줬다. 면접위원들은 이 학생보다 훨씬 높은 서류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면접에서 떨어뜨려가며 이 학생이 입학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까지 했다.
굳이 이름을 안 밝혀도 전 국민이 알만한 ‘유명인’이 된 이 학생은 입학부터 학사 전반에 걸쳐 일반 학생들은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받았다. 결국 교육부 감사에 따라 입학이 취소되게 됐다.
이화여대 입시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유라씨에 대해 교육부는 학교측에 입학 취소를 요구했다. 국정농단 당사자이자 정씨의 어머니인 최순실씨와 정씨,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해선 수사의뢰를 하는 한편, 입학과 학사 부정에 책임이 있는 관련자들에 대해선 중징계나 형사 고발을 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18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이화여대에 대한 특별사안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에서는 그동안 언론에서 제기해 왔던 입학 및 학사관리의 부정과 특혜 의혹들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최근 정씨의 모교 청담고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학사농단 종합세트’가 이번엔 장소만 바꿔 여지 없이 되풀이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10월18일 체육특기자 면접 당일 이대 입학처장은 정씨가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을 가지고 온 사실을 미리 알고 면접위원 오리엔테이션 도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뽑으라”고 말했다. 이 메달은 체육특기자전형 원서접수 마감일(9월15일 ) 이후인 9월20일에 딴 것이어서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정씨는 면접 지침상 면접장에 금메달을 들고 갈 수 없는데도 지참을 허용해 줄 것을 학교측에 요청했고 학교측은 반입을 허용했다. 정씨는 면접 때도 테이블 위에 금메달을 올려놓고 위원들에게 “금메달을 보여드려도 되느냐”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면접위원들은 서류 평가에서 정씨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 2명에게 “전성기가 지나 뽑으면 안된다”는 이유를 들며 낮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결국 면접위원들은 정씨에게 높은 점수를 줬고, 서류평가 대상 21명 중 9등이었던 정씨는 최종 6등으로 합격했다. 탈락한 학생들에 대해선 구제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에선 부실한 리포트 제출로도 점수를 받는가 하면 심지어 교수가 과제물을 대신 제출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글로벌융합문화체험 및 디자인 연구’ 수업에서는 의상디자인과 제작과정 설명, 시제품을 교수에게 제출해야 했다. 정씨는 기성복을 입고 찍은 사진만 내고도 중간 과제물로 인정받았다. 담당 교수는 정씨가 기말 과제물을 내지 않자 직접 액세서리 사진과 일러스트 등을 첨부하고 정씨가 직접 과제를 제출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이번 감사는 정씨에 특혜를 제공한 교수들이 여러 건의 정부 연구비 과제를 수주했다는 의혹도 조사했지만 비리여부는 확인하지 못하는 등 한계를 노출했다.
무엇보다 최순실씨나 정부 관계자, 최경희 전 총장 등이 정 씨 입학이나 학사관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혹 해소에도 실패했다. 최 전 총장과 김경숙 신산업융학대학장 등 핵심 관련자들이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부인하는데다 최순실씨 모녀를 직접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입학처 직원들로부터 “입학처장이 ‘정 씨를 선발하라고 최 총장이 지시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진술도 확보했지만 최 전 총장 등이 이를 강력히 부인해 진상 파악에 실패했다.
학칙을 정씨에게 유리하게 개정해 소급 적용한 부분 역시 특혜 의심 정황은 확인했으나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윗선’의 부당한 지시나 압력이 있었는지는 최씨 모녀와 최 전 총장등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게 될 전망이다.
한편 교육부는 정씨의 사촌 장시호씨가 고교시절 최하위권 성적을 받고도 장학금을 받고 연세대에 입학한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 이같은 입시부정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협의해 체육특기자 입시비리 근절대책 및 학사관리 실태를 철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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