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한류월드내에 위치한 K-컬쳐밸리 부지 전경. [사진 제공 = 경기도] |
지난 15일 경기도 일산 장항동의 킨텍스 인근. 우뚝 솟은 호텔과 킨텍스 전시장 사이로 쌀쌀한 칼바람이 불면서 지나가는 인적도 ‘뚝’ 끊어져 황량한 풍경이다. 큰 공터를 따라 가벽을 세워놓은 공사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여느 공사장처럼 분주한 포크레인과 트럭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불과 세달 전만 해도 이 곳은 ‘팡파르’가 터지는 축제 도가니 였다. 지난 8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곳에 들려 “오늘 착공하는 K-컬쳐밸리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조성의 화룡점정”이라고 극찬했다.
K-컬쳐밸리는 CJ 컨소시엄과 경기도가 총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하는 대규모 민관 사업이다. 축구장 46개 규모에 달하는 30만㎡ 부지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 등 한류(韓流) 콘텐츠를 활용한 테마파크와 2000석 규모의 공연장, 한옥 등의 전통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을 2017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신도시 준공 20년이 훌쩍 지나면서 같은 시기 준공된 분당과 달리 ‘베드타운’으로 전락해가는 일산 주민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돌연 ‘국정농단 비선’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 측근 차은택씨(47)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에 휘말리면서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매일경제가 찾아간 주엽역 인근 경기도청 한류월드사업단 사무실은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한류월드는 경기도가 지난 2004년부터 고양시 일산동구 대화동, 장항동 일대 99만4756㎡에 문화문화콘텐츠 개발·생산 업무 중심지 개발을 위해 시작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지난 10년간 지지부진하다 사업지구 안에 K-컬쳐밸리 사업이 확정되자 경기도의 한류월드 사업도 다시 탄력받은 것이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직원 A씨는 “최근에 지원나와 아무 것도 모른다”며 “실무자들은 현재 모두 경기도의회에서 감사를 받느라 정신없다”고 말했다.
차은택 의혹 여파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경기도측의 사업지원 활동도 ‘올스톱’된 것이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9월 7일 K-컬처밸리 특혜의혹 행정사무감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한류월드내 부지에 영상산업단지와 지원시설인 한류마루를 조성하려던 계획이 일주일 만에 CJ E&M 컨소시엄이 주도하는 K-컬처밸리로 변경된 이유, 연 토지 임대료를 1%에 50년간 장기 임대한 이유 등 사업 추진 과정 하나나라를 꼬치꼬치 두달 넘게 따지고 있다.
최근엔 당시 행정부지사로 근무했던 박수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지난해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 청와대 행정관이 전화해 K-컬처밸리 부지를 CJ그룹에 무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혀 청와대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고 특위 시한도 다음달 5일에서 31일로 연장됐다.
K-컬쳐밸리 자체는 민자사업이지만 전체 한류월드 계획이 경기도측 예산삭감 등으로 흔들리면 영향이 불가피하다. 혹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부지계약을 비롯해 향후 인허가 등에 ‘찬물’이 예상된다.
사업자인 CJ그룹측은 어차피 민자 사업이고 테마파크 사업은 그룹의 숙원이기 때문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1조40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의혹으로 거론되면서 사업 좌초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참여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CJ 관계자는 “아직 확실히 드러난 것도 없는데 자꾸 ‘의혹’이 커지다 보니 당초 관심을 보였던 투자자들이 머뭇거리고 있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풍파를 지켜보는 고양시 일산 지역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장항동 근처 주엽역 인근 부동산들에 따르면 K-컬쳐밸리 사업이 가시화 되기 전인 1년전과 대비해 인근 집값은 20평대 소형들은 가구당 7~8000만원씩, 30대평 아파트 매물은 1억원씩 올랐다. ‘ㄱ’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5월에 정부에서 킨텍스 인근에 5500가구에 이르는 임대주택 등 행복주택 계획을 발표한 이후에 민심이 장난이 아니었다”며 “그래도 테크노밸리랑 K-컬쳐밸리 입지가 확정되면서 집값이 많이 오르자 반발이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K-컬쳐밸리가 차씨의 각종 비선개입 의혹으로 좌초되고 경기도가 K-컬쳐밸리 주변에서 시행하는 한류월드사업 예산
주엽 2동 인근 아파트 주민 이모씨(43)는 “일산은 남들 다 기피하는 임대주택에 저가 분양아파트만 넘쳐나 집값은 더 떨어질 것”이라며 “일산은 결국 또 아파트만 수두룩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탄식했다.
[지홍구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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