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8일부터 전격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5일로 시행 100일째를 맞는다.
부정 청탁과 낡은 접대문화를 근절하고자 만든 법이지만 현실과 괴리된 법조항들 때문에 실제 적용 현장에서는 애매모호한 규정의 빈틈을 노린 '꼼수'가 속속 고대들고 있다. 특히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위법 여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질의에 절반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어 유권해석을 둘러싼 혼란도 가중되는 양상이다.
4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서울의 한 고급 한식당에서는 새로운 결제 방식을 내놓았다. 해당 식당은 청탁금지법 도입 이후 5만원권 기프트카드를 만들었다.
기업 관계자나 대관담당자가 공직자 등과 함께 식사를 할 경우 기프트카드를 선물해 우회적으로 더 높은 식사비를 계산하라는 의도다.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한 식사 상한액은 3만원이지만 선물 상한액은 5만원이라는데 착안해 만든 꼼수로 풀이된다. 해당 식당은 메뉴판에 "김영란법 제 8조 제3항 제2호 법령에 준한 상품"이라며 "김영란법 담당자와 질의로 확인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법규의 빈틈을 틈타 편법을 이용한 모바일 외식 상품권을 판매하는 전문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한 O2O 업체는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 등 주요 오피스 밀집 지역을 식당을 대상으로 5만원권 선불형 외식카드를 내놓았다. 해당 업체는 청탁금지법상 '선물'로 분류되는 해당 카드를 기업에서 카드를 대량 구매할 경우 실물 카드로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청탁금지법과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서울지역 주요 식당 1000여 곳이 해당 업체에 제휴를 맺어올 정도다.
이같은 '꼼수'에 대해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도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방법이 어떻든 일단 법테두리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식당과 모바일 업체에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이라는 기준을 이용해 편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법률적인 검토에 들어갔다"면서도 "해당 영업 방식이 지금 당장은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점심이야 모르겠지만 저녁에 만나서 삼겹살이라도 굽고 소주 한잔하다 보면 금새 3만원을 초과하는 실정"이라며 "법이 현실성 있게 바뀌지 않는 한 꼼수를 사용할 수 밖에 없지 않나"고 말했다.
이 뿐 아니다. 식사 한도액 1인당 3만원을 맞추기 위해 총액을 여러 차례 나눠서 결제하는 '영수증 쪼개기'나 접대 인원수를 실제보다 늘려서 계산하는 '인원 부풀리기'가 관행처럼 통한다는 게 관공서와 대기업 대관 부서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얘기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는 박 모씨는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 직원들의 명함까지 따로 챙겨 다닐 정도"라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실제 개인이 먹은 음식의 가격보다 전체 금액에서 인원수를 나눠 평균 결제 금액으로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다보니 추후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미리 인원수를 부풀려두려는 의도에서다. 다수 식당에서는 몇 명이 먹었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영수증에 총액만 나오게 해달라는 요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 인근 한 일식당 관계자는 "가게를 자주 찾는 홍보 관계자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총액만 나오도록 영수증을 끊어 내어주고 있다"며 "같이 동행한 손님들도 3~4만 원가량의 식사는 눈치껏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법 시행일인 지난해 9월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집계된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 신고·접수 건수는 총 117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중에서 권익위가 신고를 받아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 실효성이 의문스럽다는 얘기다.
서울대에선 최근 일부 단과대가 "학생들의 학점정정 요청이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교수들에게 발송했고 교수들은 성적이의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공식적인 성적수정 요청이나 아예 재수강을 위해 F학점으로 낮춰달라는 요구조차 묵살되기 때문이다. 권익위에 접수된 질의는 1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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