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18년 정치인생은 '대한민국 최초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로 끝 맺게 됐습니다.
헌법재판소가 10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전원 합의 파면결정을 내리면서, 이미 권한행사가 정지된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20년 가까운 영욕의 정치인생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입당으로 시작됩니다. 1979년 10월 26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칩거생활을 해오다 1997년 외환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정치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듬해인 1998년 4월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 19대 때까지 내리 5선 의원을 지냈습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 등을 거치며 기회를 노리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부터 중앙 유력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됐습니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박 전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 대 0'이라는 완승을 거뒀습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 후보와 접전 끝에 패배했습니다.
![]() |
↑ 박근혜 탄핵 / 사진=MBN |
이후 박 대통령은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진두지휘했고 2012년 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돼 그해 12월 19일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득표율 48.0%) 후보를 꺾고 당선됐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독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취임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펼쳐왔습니다.
하지만 집권 4년 차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역대 대통령의 통상적인 레임덕 수준을 넘어서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즉각 하야를 요구받는 초유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학소추를 받아 대통령으로서의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1월 3일부터 2월 27일까지 총 17차 변론을 진행하며, 양측이 법정공방을 벌여왔습니다.
1월 24일에는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서 "3
대한민국 최초로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형사상 법정공방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