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일주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영화 속 인물 '위르겐 힌츠펜터'의 삶이 재조명 받고 있다.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에 알린 언론인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피터'의 실존 인물이다.
그가 1980년 5월 광주로 간 것은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듣고 취재를 위해 광주로 향했다.
외신기자로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5·18 당시 외신기자였던 브래들리 마틴(더 볼티모어 선)은 지난해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는 기간 내내 한국 정부는 내가 기사를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한국 정부는 내가 보내는 기사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 안에서는 전화기도 사용할 수 없었고 기사도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26일 저녁에서야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다른 5·18 외신기자였던 도날드 커크(시카고 트리뷴)도 같은 인터뷰에서 "시민군들이 본부로 쓰고 있는 도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몇 사람을 인터뷰했고 시민들은 프레스카드를 줬다"고 당시 현장을 회상했다.
하지만 위르겐 힌츠페터는 현장을 신속하게 담아내기 위해 '프레스카드' 발급을 생략하고 삼엄한 통제를 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자 정신'에 그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80)는 "위험한 곳을 많이 취재했지만 죽지 않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며 "'광주' 때도 헬리콥터에 매달려 찍기도 했다"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설명했다.
취재를 위해서 위험도 불사했던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독일로 보냈다.
촬영된 필름은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4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5·18이 전세계에 알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2003년 5월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오로지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려는 생각뿐이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모두 10개의 광주 필름을 쿠키 깡통처럼 포장해 함부르크 뉴스센터로 보냈다"며 "현상된 필름의 마지막 1㎝까지도 버리지 않으려 애썼다"고 취재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은퇴 후에도 1997년 5월 '광주를 알린 외신기자' 토론회에 참석해 소견을 말하고 5·18 25주기를 맞아 광주를 방문하는 등 계속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2004년 심장 질환으로 고비를 모면한 후에도 "광주 망월동에 묻히고 싶다"고 말하며 뜻깊은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생전 광주에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던 그는 지난해 1월 25일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가족들은 광주에 묻히고 싶다던 위르겐 힌츠페터의 뜻에 따라 지난해 5월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 유품
같은 해 위르겐 힌츠페터의 추모식에 참석한 그의 부인은 "그때 희생됐던 학생들과 함께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지에 묻히는 것은 힌츠페터의 바람이었다"며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 묻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