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보기 어려운 12월 말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하늘도 아팠나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최악의 화재 참사로 숨진 희생자 중 19명을 한꺼번에 떠나보내느라 온 도시가 깊은 슬픔에 잠긴 충북 제천의 하늘에선 온종일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느닷 없이 찾아온 황망한 작별이 믿겨지지 않아 망연자실해 하는 남겨진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후벼 파며 내린 구슬픈 장대비였습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화마는 단란했던 할머니·딸·소녀 3대, '봉사천사' 등 29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지난 23일 희생자 중 처음으로 장경자 씨의 열린 데 이어 이날 19명의 희생자들이 추모객들의 애도 속에 이승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습니다.
이들을 보내는 유족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친정어머니 김현중 씨와 경기 용인에 사는 딸 민윤정 씨, 손녀 김지성 양 3대를 한꺼번에 떠나보내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더 흘릴 눈물도 없을 듯했지만 3개의 관이 한꺼번에 나오는 순간 유족들의 얼굴은 금새 눈물범벅이 됐습니다.
단란했던 3대는 지난 21일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함께 목욕탕을 찾았다가 비극을 맞았습니다.
올해 대입 수능시험을 본 김양은 장학생으로 서울의 모 대학 입학이 확정됐으나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발도 들이지 못한 채 꽃 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김양의 친구 신모 양은 "지성이는 성격도 좋고, 노래도 잘해서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며 "작가의 꿈을 이루려고 원하던 국문과에 합격했는데 너무 허망하게 이렇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치실에서 3개의 관이 나오자 김양의 아빠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목놓아 울다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앞서 이날 오전 7시 제천 보궁장례식장에서는 민양과 동갑내기인 김다애(18) 양의 영결식이 거행됐습니다.
김 양 역시 4년 장학생으로 '인 서울'에 성공, 내년에 대학 새내기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김 양은 이날 스포츠센터 매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 보러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수시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나선 효녀였습니다.
입버릇처럼 "봉사를 위해 태어났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한 '봉사천사' 정송월 씨도 이날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정씨의 비보는 유족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난 8년간 봉사단체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식 봉사를 하는 등 남을 위한 나눔의 삶을 살아온 그였습니다.
정씨와 함께 봉사단체 활동을 해온 한 지인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를 몸소 실천한 훌륭한 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오는 25일에는 10년가량 사고 현장 근처의 고교에서 조리사로 일해오며 억척스럽게 가족을 건사한 최순정 씨 등 5명, 26일
지난 21일 오후 3시 53분께 제천시 하소동의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이용객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쳤습니다.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40명 사망) 화재 이후 9년 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화재 참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