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권 축소를 골자로 한 청와대의 급작스러운 권력기관 개편안 발표를 놓고 검경 수사권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개편안 발표 직후 예고없는 검사장 인사에 동요한 검찰이 일선 경찰 비위 수사에 나서고 경찰은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 권한 분산을 주장하고 있다. 부처나 정치권 간 충분한 협의 없이 청와대의 이례적인 권력기관 개편안 발표가 나온 데다 개헌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검찰과 경찰은 물론 정치권까지 전방위적인 대결양상에 진입하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오는 6·13 지방선거를 관리할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오인서 광주고검 차장검사(52·사법연수원 23기)를 보임하고 직무대행 체제인 부산지검장에 김영대 창원지검장(53·22기)을 전보하는 등 8명의 검사장급 인사를 19일자로 단행한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이날 갑작스런 인사를 14일 '1차 수사권 경찰 이관' 등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주도한 '검찰 힘빼기'에 이은 '길들이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한 사유 없이 이석환 청주지검장(54·21기)을 부임 5개월 만에 초임 검사장 자리인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전보하는 등 일부에 대해 불이익을 주고 중요 수사 경험이 없었던 간부들을 요직에 중용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지검장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 중수2과장이었다는 이유로 여권의 견제를 받아왔다.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 변호사(60·14기)는 해외 체류 중이고 중수1과장이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51·19기)은 최근 구속수감됐다.
공석이던 대검 강력부장에는 고기영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53·23기)을 전보했다. 후임 국장은 '법무부 탈검찰화'를 위해 일반 고위공무원단에서 임명한다. 법무부는 지난 9일 후임자 공개채용을 공고했고 앞서 법무실장, 출입국본부장, 인권국장 등 3개 직위에서 검사를 배제했다.
검사들은 동요하는 분위기다. 전직 간부들 사이에선 "법무부의 무리한 가상화폐 대책과 최저임금 후폭풍 등 정책실패가 계속되니까 지방선거를 앞둔 정권이 지지율을 다잡기 위해 또 다시 '검찰 때리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과연 검찰총장이 동의하고 검찰 조직에 필요한 인사였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전직 고검장은 "검찰 개혁의 최우선 요건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인데 이런 식의 인사는 현 정권이 기준도 원칙도 없이 검찰 장악을 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의 비위 행위를 놓고 검찰 차원의 수사가 이어져 해묵은 진흙탕식 검경 수사권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5일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신응석 부장검사)는 불법 유흥업소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 소속 경감 2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현직 경찰 박 모씨(58)와 고 모씨(54)는 지난해 가을 경찰에 단속된 송파구 가락시장 일대의 한 유흥업소 주인으로부터 100만원을 받아 50만원 씩 나눠가졌다. 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유흥업소 주인 사건을 맡은 고 씨에게 '친절하게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시기에 경찰 비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적철치 못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고 경찰에 힘을 실어준 청와대 발표에도 경찰은 "바뀐 게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영장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이상 수사기관 간 불균형 구조가 해소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장청구권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형사소송법과 같은)법률에 규정할 사안이라는 것이 지난해 국회 개헌 논의 당시 다수설이었다"며 "개헌 시 특정 기관이 영장청구 권한을 독점해선 안된다는 시대정신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도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경제·금융 사건으로 폭넓게 인정한 것은 검찰 개혁의 본질인 검찰 권력 쪼개기를 무의미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해 11월 30억원 규모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두 반려했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안에 따르면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은 1차, 검찰은 2차 보완수사를 맡게 된다. 표면적으론 경찰 수사 권한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선 경찰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최우선 개선 과제로 지목해 온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한이 그대로 유지된다. 헌법 제12조에 따르면 체포·구속·압수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원에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경찰 수사부서 관계자는 "경찰이 1차 수사를 하고 피의자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해도 검찰이 계속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지 않으면 달라질 게 없다"며 "이번 발표는 오히려 영장과 관련된 검찰의 독점적 권한을 제도적으로 인정
이 청장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전제가 약간 후퇴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영장청구권은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고 관련 국회의원 발의도 4건 이상 계류 중"이라며 "영장청구권과 관련해 청와대에 추가로 요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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