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당사자가 특정 언동으로 인해 성적 굴욕감,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볼 수 있으나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문제 발언이 나온 맥락을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인지... |
지난 9일 학생회가 페이스북에 올린 '성폭력 사건 공론화 및 최종 보고'에 따르면 18학번 A씨는 지난해 3월 여성 동기들에게 "너 정도면 얼굴 괜찮다", "우리 섹션 여자애들 정도면 다 예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학부 섹션 성평등주체에 A씨의 발언이 신고됐고, 이후 사건을 조사할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책위는 A씨의 발언이 '특정 성별에 적대적이거나 불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특정 성별을 대상화하거나 비하하거나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를 언어 성폭력으로 규정했다. 이어 대책위는 A씨에게 공식적인 학회 행사 및 활동 제한, 성평등상담실 교육 이수 등의 처분을 내렸으며 동시에 A씨의 사과문도 함께 게재했다. A씨는 사과문에서 "동기들과 미팅과 관련한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 얘기가 나왔다"며 "칭찬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비교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결정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자 거센 반발이 폭주하며 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예쁘다는 발언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학교생활까지 학생회 자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권력 행사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서강대 학생들의 비판여론이 이어지고, 언론 보도를 통해 적절성 논란이 일자 대책위는 지난 10일 "사건 대처가 미숙했다"며 사과했으며 공간 분리 처분을 A씨가 성 평등 교육을 이수할 때까지로 한정했다. 대책위의 결정 번복에 이어 지난 14일에는 국제인문학부 운영위원회 또한 "섣부른 판단이 초래한 결과"라며 사과했다. 운영위는 사과문에서 "대책위가 언어 성폭력으로 규정한 사건에 대해 운영위의 본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글이 게시된 것"이라며 "대책위는 사건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와 운영위의 사과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여전히 문제 발언을 언어 성폭력으로 볼 수 있을지를 두고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대책위의 판단대로 '너 정도면 얼굴 괜찮다'라는 발언을 언어 성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IBS법률사무소 유정훈 변호사는 "법적으로 성폭력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강간, 추행 등 신체적인 가해를 의미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성폭력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언어 '성희롱'으로 정의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이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현행법상 성희롱은 성폭행이나 성추행과는 달리 형사 처벌 근거가 없다. 현행 형법은 강간이나 추행, 성풍속에 관한 죄, 간음에 관한 죄를 규정하고 있어 성희롱은 형사 처벌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즉 성희롱이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엔 가해자에 대한 형법상 처벌 규정이 아직 없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아동 대상 성희롱의 경우 아동복지법에서만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유 변호사는 "당사자가 특정 언동으로 인해 성적 굴욕감,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며 "언어 성희롱만으로는 현행법상 형사처벌은 어렵지만 굴욕감, 수치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면 민사소송을 거쳐 정신적 손해배상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태정 변호사 또한 "단순한 권력 관계나 상하 구조를 떠나 동급생 간에 발생한 문제일지라도 외모 평가를 통해 당사자가 성적으로 굴욕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볼 수 있어 민사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 변호사와 양 변호사 모두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문제 발언이 나온 맥락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친구들끼리도 흔히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된 맥락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너 정도면 예쁘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맥락이 성적으로 문제시될 상황이었다면 성희롱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성희롱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인지를 중점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