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네덜란드 파라다이스 케어팜을 찾은 노인들이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 "요양원은 걸어 들어가서 죽어서야 나오는 곳이다. 이러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자연 속에서 일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수도권 거주 60대 여)
# "자식과 함께 같이 살자니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요양원에 들어가자니…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는 것 같아 두렵다."(경북 거주 80대 할아버지)
이 처럼 폐쇄적인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모시려 해도, 꺼려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선뜻 치매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치매환자로 인해 보호자 등 가족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치매는 노인에겐 공포의 대상이고, 가족들에게는 일상을 위협하는 재앙인 셈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치매환자는 75만명에 달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10명 중 1명, 85세 이상 노인 2명 중 1명이 치매환자로 추정된다. 치매환자는 12분에 1명씩 발생하고 이 같은 추세로 오는 2025년에는 100만명, 2030년에는 137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럼, 선진국들은 이러한 치매노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고 있을까. 이에 매경미디어그룹에서는 최근 노인복지의 선진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 요양현장 시찰단을 모집해 5박7일 일정으로 진행했다.
◆ "치매 걸려도, 농장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하니 마음이 뿌듯해져요"
#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단한 활력을 느낀다. 농장에서의 일상적인 활동은 '내가 못하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일깨워 준다."
매경 시찰단이 첫 방문지 호그벡 마을에 이어 네덜란드 돌봄 농장인 케어팜(care farm)을 방문했을 때 노인들이 내놓은 일성이다. 케어팜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는 등 한국에서도 치유(사회적)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네덜란드 케어팜은 1993년 유럽연합(EU)이 탄생하면서 농사만 짓고 먹고 살기 힘든 영세 농장들이 새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농장에서 치매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 주고 추가 소득도 올리는 케어팜은 노인복지와 농촌문제를 동시에 푸는 묘수다. 네덜란드에서는 1995년부터 본격화해 현재는 1400여 개의 케어팜이 운영 중이다.
![]() |
↑ 매경 시찰단이 드 레이거스 케어팜에서 딸과 함께 공동 운영하는 행크 스미스(앞·가운데) 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그럼, 농장주는 어떤 시스템으로 소득을 올릴까.
먼저 네덜란드에서는 정부 지원제도를 통해 농장주에게 돌봄 금액을 제공한다. 이용객 증상의 종류 및 정도에 따라 또 농장 이용빈도(데이케어팜 경우)에 따라 돌봄금액은 차등지급 한다. 대개 반나절 돌봄에 평균 1인당 35유로, 즉 한화로 약 4만5700원 정도를 지급한다. 농가당 평균 소득이 연간 9만유로, 1억 1750만원 정도되니 굳이 농산물 생산에 집중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한 수준은 된다. 케어팜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쉽다고 보면 오산이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까다로운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하고 돌봄 서비스 품질이 정기적인 검사에 모두 통과해야 한다.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는 "케어팜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네덜란드에선 정부의 복지서비스 중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됐다"면서 "케어팜 활성화는 보건복지정책에 따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정 지원은 복지부의 장기요양지원과 건강보험, 지자체의 복지예산 등이다. 한국과 달리 농림부에서는 관여하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시찰단이 방문한 곳은 증중 치매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거주형 '드 레이거스 케어팜'과 노인·장애아동이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데이케어형 '파라다이스 케어팜'이다.
드 레이거스 케어팜을 딸과 함께 공동 운영하는 행크 스미스 씨는 "네덜란드 전체 인구 1700만명 중 치매환자가 28만명"이라며 "치매에 걸리면 보통 8~10년 정도의 경과기간을 거쳐 돌아 가시는데 여기 거주하는 27명 정도는 치매 말기여서 2년정도 여기서 생활하다 돌아가신다. 물론 초기 치매노인 12명은 농장에서 직접 픽업해 농장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오후에 모셔다 드리는 데이케어도 함께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 |
↑ 드 레이거스 케어팜의 전경. |
행크 스미스 씨는 "장인 어른은 야외활동을 무척이나 좋아한 분이셨는데 폐쇄적인 요양건물에 오래 생활하다 보니, 많이 불안해 하고 때론 발작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요양시설에서는 장인 어른을 의자에 꽁꽁 묶어 두곤 했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이어 "비록 병에 걸렸지만 치매노인도 개인적인 취향이 있고, 모두가 인간적으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다. 퍼스널 케어에 초점을 맞춰 케어팜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
↑ 파라다이스 케어팜의 전경. |
그는 "지금 이 곳의 입실 대기자가 200명 정도 될 정도로 인기를 실감한다"면서 "전통적인 요양시설은 미리 짜여진 스케쥴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퍼스널 한 라이프 스타일 추구가 우선이다. 늦잠 자려는 사람은 늦잠 자고, 잠자리 들기 전에 술 한잔 해야 잠이 오는 사람은 그러한 스타일을 존중한다. 계란 완숙을 좋아하는 노인에게는 따로 완숙을, 원한다면 자신이 사용하던 침대나 가구 등도 여기에 갖고와서 생활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 |
↑ 매경 시찰단이 드 레이거스 케어팜에서 일정을 마치고, 공동 운영자인 행크 스미스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 처럼 인기몰이를 하는 네덜란드 케어팜도 한때 일부 업자들의 부도덕성 등으로 곤욕을 치뤘다. 농장을 운영하지 않고 돌봄 서비스만 하는 경우나, 정부 지원금만 받고 치매노인은 방치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의식 있는 농장주들을 중심으로 협회를 설립해 까다로운 자체 품질관리 기준을 세웠다. 특히, 3년에 한 번씩 정기감사 후 통과한 케어팜에 '튤립 모양의 품질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등의 노력으로 혼탁 양상을 보였던 케어팜들도 질서를 찾아 가고 있다.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는 "거주형 케어팜은 주거를 제공하는 특성상 네덜란드와 같은 복지부문의 재정적 지원이 없이 운영하면 이용객의 금전적 부담이 너무 심해 결국 이용객을 제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우리나라는 무턱대고 거주형을 도입하기 보다는 재정적인 문제를 포함한 법률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논의한 후에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디지털뉴스국 류영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