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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 우리 법학교육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서울대가 법학교육 백 년을 반추하는 역사관을 개관했습니다.
갈태웅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기자 】
1895년 광화문 앞 법관양성소.
구한말 근대 법학이 이식되기 시작하면서 법학도들은 구법전인 경국대전과 대명률에서 점차 탈피하는 대신 해외에서 들여온 새 법전으로 교육을 받게 됩니다.
특히 일본에서 들여온 형법총론과 일일이 필사한 법국율해, 즉 프랑스 민법전은 이 시기 법학도들의 주요 교과서였습니다.
법관 임용 뒤 입는 법복은 사실상 관복이었습니다.
1904년, 한국 법전 최초로 해외에서 번역됐던 크레마지의 '대한형법전' 불어판도 눈에 띕니다.
일제시대 경성제대에서 가르쳤던 육법전서는 법전의 대표 명사로 회자됩니다.
해방 이후 출범한 서울대 법대에서 한국의 법학교육은 정립되기 시작합니다.
부산 피란 시절, 유기천 법대 학장이 내걸었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현판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 큽니다.
법대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혈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했던 유진오 선생의 친필 문서도 소중한 사료입니다.
▶ 인터뷰 : 최종고 / 서울대 법대 교수
-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튼튼하게 법학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이 역사관은 보여줍니다."
▶ 스탠딩 : 갈태웅 / 기자
- "한 세기를 이어온 한국 법학 교육의 역사, 로스쿨 시대, 또 어떤 한 세기를 그려나갈지 기대됩니다.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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