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박찬형 기자]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역전드라마로 전해져 오고 있는 1979년 봉황대기 대구고-서울고의 준결승전. 9회초까지 7-13으로 뒤지던 대구고는 9회말 7점을 뽑아내며 거짓말 같은 14-13의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당시 대구고 4번 타자이자 대구고 야구부 창단멤버인 도이석(52). 대구고와 영남대를 거쳐 OB 베어스 외야수로 활약했던 도이석이 고향인 대구에서 요식업 사업가로 성공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도이석은 전용권, 전승희, 심규영 등과 함께 대구고 야구부 창단 멤버로 고교시절 특급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중-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가 “천재적인 타격감을 지닌 선수”라고 극찬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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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4경기에 출전해 타율 1할5푼4리에 그쳤고, 1987년에도 38경기 타율 1할3푼의 부진에 허덕였다. 도이석은 “사실 프로의 엄청난 훈련량에 적응을 못했다”면서 “더불어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햄스트링 부상을 입는 바람에 6개월 동안 치료와 재활을 병행했다”고 밝혔다.
도이석은 1988년 야구계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27세 때였다. 당시 OB의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현 고양 원더스) 감독과의 불화 때문. 도이석은 “OB는 88년 타 구단과는 다르게 제주도에서 스프링캠프를 실시했다. 1월이니 눈도 쌓인 상태고 얼마나 추웠겠나”라며 “당시 김광림, 박노준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슬라이딩 캐치를 하는 과정에서 글러브가 벗겨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성근 감독이 오해를 하고 따귀를 때렸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후 도이석은 2군행을 통보받았고,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 도이석은 “김성근 감독에 대한 감정은 전혀 없다”며 “감독으로선 최고였다”고 말했다.
도이석은 야구선수 최초로 소속 구단 계열사인 OB 맥주에 입사했다. 3년 동안 대구지점에서 근무를 한 뒤 OB 야구단 운영진으로 복귀하는 조건이었지만, 새로운 일에 흥미를 붙인 도이석은 본격적인 요식업 사업에 손을 댔다.
1991년 미국 유학 중 자신의 눈길을 사로잡은 'beer&restaurant'을 대구에 최초로 개업해 대성황을 이뤘다.
한때 대구시내에 4~5개의 점포를 두고 한 달 매출 1억5000만 원 이상의 승승가도를 달렸으나 90년대 말 IMF 위기에 이어 몇년 전 유럽발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아이템을 바꿔가면서 험난한 요식업계에서 생존했다.
현재 도이석은 복어사업에 뛰어든 상태. 2001년 복어 수입 및 유통업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복어 샤브샤브 사업을 시작했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복& 복어'를 운영하고 있는 도이석은 손
도이석은 “야구 선수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며 “사업가로서 또 한 번 홈런포를 날리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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