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오는 26일 홈경기에서 만나는 FC서울을 제외하고는 다른 12개 클럽과 모두 맞붙어 제주유나이티드가 얻어낸 결과는 6승4무2패, 리그 2위다. 호성적이다. 올 시즌 제주는 대부분의 팀들이 만나기 꺼리는, 까다로운 팀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박경훈 제주 감독은 만족할 수도, 안심할 수도 없다고 했다. 여느 때보다 치열한 순위다툼을 생각하면 절대 방심할 수 없다. 23일 제주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박경훈 감독은, 그래서 경기를 앞두고는 긴장과 스트레스에 적잖은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 캐내서 키운 제주의 미드필더들
인천의 베테랑 미드필더 김남일은 언젠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제주’라고 밝혔다. 미드필더 입장에서 제주의 허리 진영은 확실히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고 수준을 인정했다. 실상 미드필드 플레이는 박경훈 감독이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경훈 감독은 “지도자들마다 나름의 철학이 있겠지만 난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라인, 미드필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축구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축구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리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2010년 제주에 부임하면서 첫 리빌딩을 할 때도 미드필드 라인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는 설명을 전했다.
당시 박경훈 감독은 기존의 구자철을 축으로 새로 영입한 박현범 배기종 등으로 탄탄한 허리라인을 구축, 돌풍을 이끌면서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성적은 굴곡이 있었으나 제주의 미드필드는 늘 후한 점수를 받았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박 감독은 “부임 후 허리진영은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 올해도 송진형 권순형 오승범에 윤빛가람까지 가세하면서 만족스러운 미드필더들을 보유하고 있다. 각자 다른 개성들을 통해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축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말로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현재 스쿼드에는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도 없고 박현범(수원)도 없으며 배기종(경찰청)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 사라져도 제주의 허리는 또 다른 재능들이 단단하게 채우고 있다. 화수분처럼 샘솟는 제주의 미드필더다. 아니, 샘솟은 게 아니라 박경훈 감독이 캐내고 키운 것이다.
박 감독은 “퍼거슨 감독을 ‘리빌딩의 귀재’라고 하는데 감독에게 중요한 능력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축구철학을 펼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선수들 영입에 노력해야한다”면서 “최고의 선수를 데려올 수는 없었으나 그에 준하는 재능들을 영입해주고 있는 구단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 선수들이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라는 말을 전했다. 팀은, 단순히 선수를 사오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지론이다.
박경훈 감독은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시즌을 되돌아보면서 부족한 곳을 살피고 그것을 메울 수 있는 선수리스트를 작성한다고 했다. 객관적인 네임벨류로 따졌을 때 제주의 스쿼드가 리그 톱클래스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순위표는 리그 톱이다. 캐고 가꿨던 박경훈 감독의 노력과 함께 얻은 결과다.
25일 현재 리그 2위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조심스러운 2위다. 1위 포항(승점 23)부터 7위 부산(승점 17)까지 단 1점씩 차이로 순위가 매겨질 정도로 혼전이 펼쳐지고 있다. 박경훈 감독은 스플릿시스템과 승강제 도입이 가지고 온 치열함이라 소개했다.
그는 “약팀들도 강팀을 만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니 만만하게 볼 수가 없다. 피해가지 않는다. 상위권에 오르려면, 승점관리를 위해 객관적으로 전력이 다소 떨어지는 팀을 꼭 잡아야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대전, 대구와 비긴 것이다. 그러나 그 팀들이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다”는 말로 ‘K리그의 살벌함’을 설명했다.
강팀과 약팀의 구분이 없어진 상황에서 또 괴로운 것이 상하위리그로 갈리는 스플릿시스템이다. 실상 강팀들에게는 상위리그와 하위리그를 구분하는 7위가 강등 마지노선이다. 지난해 누구도 예상 못했던 부진과 함께 하위리그로 떨어졌던 성남은 시즌 끝까지 헤매다 12위에 그쳤다. 다른 팀들이 그 고통을 지켜봤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감독은 “상위권 팀들에게는 8위가 강등이다. 떨어지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난다. 7위 안에 들어가지 못해 (상위리그에서)떨어진다면 선수도 구단도, 감독인 나부터도 경기에 나가는 동기를 찾기 힘들다”면서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다소 부진하지만 서울이나 성남은 도약할 저력을 갖춘 팀이다. 결국 8~9개 팀이 7위 안에 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펼칠 것”이라는 말로 더더욱 혼전양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그래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방심’이다. 그는 “한순간 안일하게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면 진다. 그렇게 2번만 연속으로 패해도 크게 추락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많은 골로 이기는 것보다 1골을 넣었을 때 어떻게 승리로 끝내느냐가 중요하다. 이겨야할 팀은 무조건 이겨야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에 감독이 전략을 잘 수립해야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는 말로 적잖은 고충이 있음을 토로했다.
박경훈 감독은, 지금처럼 잘 풀리고 있을 때 승점을 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바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 박경훈 감독과 제주유나이티드의 목표는 리그 3위 진입. 꼭 ACL에 나가야하기에 더 간절하다.
“최종목표는 3위인데 내 마음처럼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절대 3위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이뤄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굴곡이 없어야한다. 연패에 빠지지 않고, 팀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승점을 챙기면서 멈추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팀이 되어야한다.”
박경훈 감독과 제주는 ACL 대회에 두고 온 빚이 있다. 지난 2010년 정규리그 준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했던 2011년 ACL에서 제주는 조별라운드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신 바 있다. 2승1무3패, 조 3위로 아쉽게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박경훈 감독은 경험 부족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2011년의 아쉬움이 크다. 나부터 선수들까지, 모두가 ACL 경험이 부족했다.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적절한 전략을 펼쳤어야하는데 아쉬움이 크다”는 말로 왜 제주가 3위 안에 들어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야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제주유나이티드라는 팀과 제주도라는 연고지를 아시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배경에 깔려 있다.
박경훈 감독은 “무엇보다도 제주도를 아시아에 알리고 싶다. 제주도 인구가 60만명 정도라는데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팀이 위치한 서귀포는 15만명이라 하는데 그 역시 실제로는 줄어들 것이다”라면서 “이런 작은 지역의 클럽이 ACL이라는 대회에 나가서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서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진짜 포부를 전했다.
2010년 제주에 부임해 어느덧 4년차. 박경훈 감독은 팀은 물론이고 제주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해졌다. 그는 “제주도에 유일한 프로스포츠 팀인 제주유나이티드가 도민들의 자긍심을 일으킬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인터뷰 도중에 자주 언급했다. ACL 출전은, 그 중요한 일환이다.
박경훈 감독은 “제주도라는 브랜드를 알리는데 제주유나이티드가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제주)에 축구를 상당히 잘하는 팀(제주유나이티드)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서 웃었다. 제주도 사람 다 됐다.
그는, 지난해 제주유나이티드가 가장 애매한 한해를 보냈다고 소회했다. 상위리그에는 들었으나 ACL 진출권이 주어지는 1~3위 경쟁에서는 이미 멀어져버린, 그래서 6위로 한 계단 올라가는 것에 그쳤던 지난 시즌은 정말 애매했다. 때문에 올 시즌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이고 현재 2위라는 순위에도 여전히 머리가 아픈 것이다.
인터뷰 말미 상대하기 어려운 팀을 꼽아달라고 말하자 서울 수원 울산 포항에 인천 성남 경남까지 줄줄이 나왔다. 괜한 질문이었다. 그만큼 긴장의
‘방울뱀 축구’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제주는 올해야말로 맹독을 제대로 K리그에 퍼뜨리고 싶다는 야심으로 뭉쳐있다. 아시아에도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다. 방울뱀 군단에서 가장 독기가 오른 이는 박경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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