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누구에게든 크게 다르지 않겠으나 김남일에게 사랑하는 가족이란 힘의 원천이다.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들고 지쳐도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에너지다.
지난 2011년 겨울, 러시아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무렵 김남일에게 일본과 중국에서 적극적인 오퍼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무거운 부담을 뒤로하고 K리그 컴백을 결정했다. 더 이상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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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중석 어딘가에서 어렵지 않게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김남일은 필드에 들어서면 항상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각오를 다졌다.
복귀를 결정할 무렵 김남일은 “가족이 그립더라.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서우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하루하루 커가는 것을 보고 싶은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때를 놓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 “만약 일본으로 가더라도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을 대동할 생각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만큼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소중한 가족은, 김남일이 나이를 무색케 한 활약을 펼칠 수 있게 한 차가운 채찍이자 더 없이 따뜻한 품이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축구화를 벗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편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뛴다. 아내도 ‘오빠 더 뛰어야해’라고 성화다. 옆에서 그렇게 잡아주니까 또 버틸 수 있다. 모든 것이 즐겁다”는 말로 함께 뛰는 행복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 힘이 결국 3년 만에 대표팀 재승선이라는 꿈같은 현실을 가져왔다.
대표팀 합류가 결정되던 날, 김남일은 짧게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한다”는 말로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의 감정은, 남편이 다시 뽑혔다는 것에 대한 기쁨은 물론이고 초라했던 마지막 기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 대한 벅참이었다. ‘마지막 기억’이란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일컫는 것이다.
당시 김남일은 나이지리아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김남일답지 않은 실수를 범해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그때 실점은 한국의 16강 진출을 좌절시킬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극적인 2-2 무승부와 함께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나 김남일과 김남일의 가족이 겪은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김남일은 “어떻게 그때를 잊을 수 있는가”라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김남일이 레바논 원정을 떠나기 직전, 아내 김보민은 단 하나의 주문만 전했다고 한다. 김남일은 “그냥,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더라”라고 전했다. 많은 것이 함축된 이야기였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잊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떨치고, 편히 다녀오라는 든든한 믿음의 격려였다.
‘우리 시대의 터프가이’ 김남일도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아들 서우를 돌보는 김남일의 모습을 보면 ‘터프가이’ 이미지는 찾기 힘들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그 어떤 격려보다 든든한 힘이 됐을 아내의 주문 하나를 품고 김남일은 비행기에 올랐다. 김남일만큼 설렐 아내와, 이제 아버지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를 악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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