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정규시즌 마지막 3경기를 남겨둔 LG 트윈스의 더그아웃이 분주했다. 경기를 3시간여 앞두고 김기태(44) LG 감독의 전용 의자가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구단 프런트가 발칵 뒤집혔다. 야구장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 경기 시작 직전에서야 문제의 의자를 찾아냈다. 원정을 다녀온 사이 LG 매니저가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 그제서야 프런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단한 의자는 보잘 것 없다. 동네 분식집이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다. 참 허름하다. 등받이나 팔걸이조차 없는 둥근 원형 의자다. 그런데 LG 더그아웃에서는 가장 특별한 의자다. 의자에는 막 쓴 글씨지만, 또렷하게 ‘LG 트윈스 감독님 용’이라고 써 있다.
잠실구장 LG 트윈스 더그아웃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김기태 LG 감독의 초라한 의자. 사진=서민교 기자 |
김 감독은 한 여름 무더위에도 반바지를 입은 적이 없고, 아무리 추워도 점퍼를 입거나 손을 주머니에 넣는 일이 없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점퍼를 입지 않기 때문에 감독과 코치들도 점퍼를 입을 수 없다는 지론이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무더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아도 된다”고 참아냈고, 팬들이 점퍼를 꺼내입을 때도 유니폼만 입은 채 훈련에 나섰다. 진짜 가을야구를 할 때 ‘유광점퍼’를 입겠다는 각오였다.
LG는 올 시즌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이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2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무려 1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직행이다. 지난 5일 정규시즌 최종일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2위를 결정지었다. 잠실 만원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독도 선수도 팬도 눈물을 왈칵 쏟았다. 가을야구가 확정됐을 때 눌러 참았던 감격의 눈물이었다.
김 감독은 LG 지휘봉을 잡은 뒤 눈높이를 선수들에게 맞췄다. 감독이 아닌 팀 내 최고참 선수로 함께 뛰었다. 또 단 한 순간도 앞서 가지 않았다.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만족을 하거나 기뻐한 적이 없다. 단지 “선수들에게 고맙다. 정말 잘해줬다”는 말만 했다.
그러나 2위를 확정지은 날. 김 감독은 눈물을 머금고 감격적인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순간조차 오직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김 감독은 “원없이 128경기를 했다. 선수들이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줬고, 선수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도 “최동수는 어떻게든 경기를 뛰게 해주고 싶어 대주자로 내보낼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은퇴 마지막 경기를 치른 최동수(42)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마지막 방송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물벼락’ 세리머니를 받았다. 주장 이병규(9번)와 김용의가 직접 나섰다. 감독과 선수가 하나가 돼 감동을 만끽한 순간이었다. 다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리내 크게 한 번 웃은 날이었다.
김 감독은 ‘유광점퍼’를 입고 즐길 가을야구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준비하며 또 다시 초라한 의자에 앉는다. 김 감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가장 먼저 마음을 다스렸다. 김 감독의 시즌도, LG의 시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극적인 플레이오프 직행 드라마를 만든 LG 김기태 감독과 주장 이병규(9번)가 감격의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