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프로야구 LG 트위스 이병규는 겨울이 가장 싫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야구가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가 좋아 눈을 뜨면 야구장으로 달려갔다는 이병규는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푸른 다이아몬드가 펼쳐져 있는 야구장으로 달려 나간다.
일년내내 경기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병규는 “야구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했다. 때문에 비시즌 기간에도 잠실구장에 나와 개인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규는 야구장을 “내 집”이라고 표현했다. 아무 이유 없이 마냥 야구가 좋다는 이병규의 야구인생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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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캡틴 이병규는 함께 하는 야구가 좋아 야구부에 가입했다고 한다. 사진=옥영화 기자 |
초등학생 이병규는 육상으로 첫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동경하는 부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야구부였다. “함께 운동하는 야구가 신기했다”라는 이병규는 육상부 훈련이 끝나면 야구부 훈련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이병규를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당시 청구초등학교 야구부 손용근 감독이었다. 손용근 감독의 눈빛은 예리했다. 달리기로도 이름을 날리던 이병규의 가능성을 보고 야구부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이병규는 송용근 감독의 지도하에 육상과 야구를 병행했다. 얼마 뒤 육상부가 해체돼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게 된 이병규는 “야구에도 달리기가 필요하다. 감독님의 제안으로 야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야구가 정말 좋다”라며 웃었다.
야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도망가본 적이 없다는 이병규다. 한 번의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무마됐다. “중학교 때 땡볕 아래에서 운동장을 쉬지 않고 계속 뛰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번에 뛰다가 교문 쪽으로 가면 다 같이 도망가는 거다’라며 동료들과 이야기했다. 드디어 교문에 다다랐을 때 밖으로 뛰려고 하자, 감독님이 ‘다 들어와’라고 소리쳐 철수했다”라며 껄껄 웃었다. 야구가 좋았기에 도망갈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장충고를 거쳐 단국대에 입학한 이병규는 캠퍼스 생활에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잔디밭 위의 자장면 먹기, 미팅문화 등 대학생에 대한 꿈이 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병규는 “캠퍼스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체육대학은 천안 캠퍼스에 있어 깜짝 놀랐다. 시즌이 시작되면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는 숙소생활과 천안 캠퍼스 소속 학생이라 서울에서 수업을 듣지 못했다”라며 아쉬워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캠퍼스 로망이 사라졌다는 이병규는 “오로지 야구만 했다”라며 야구를 잘 하게 된 계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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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 2007 아시안컵까지 국가대표로 한국프로야구를 빛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이병규의 야구인생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이병규는 "나에게 엄청난 행운을 준 똥이 있다"라며 운을 뗐다.
이병규는 “훈련을 마치고 버스에 탔는데 계속 내 주위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났다. 주위를 살폈더니 내 운동화에 어느 누군가의 변이 묻어 있었다. 기분이 안 좋다기 보다 후배였기에 감추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닦았다. 그런데 ‘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라고 하더니 다음날 경기에서 5타수 5안타 11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그해부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혀 2007년 아시안컵까지 쉬지 않고 가슴에 국기를 달았다”라며 "알고 밟았으면 찝찝했을텐데 진짜 모르고 밟았다. 가끔 생각하는데 그 똥으로 인해 대표팀이 됐고 기량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라며 뿌듯해 했다.
국제대회에 가서 이병규의 시야가 넓어졌다. 그 동안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표현한 이병규는 “각 학교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 모인 자리였다. 또한 대회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을 보니 지금까지 내가 한 야구는 조그마한 야구라고 깨달았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단 생각에 같이 훈련을 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파악했고 어떻게, 왜 잘 하는지를 연구했다”라고 말했다.
프로 첫 시즌부터 전 경기(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5리 7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이병규는 "첫 해부터 3할 치는 등 운이 따랐다. 당시 최고의 선수들이 있었지만, 감독님은 날 믿어주고 밀어줬다. 그 이후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감각을 익혔다. 시즌 중 관중석을 꽉 채워준 팬들의 응원도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남았다. 이병규는 "신인 때부터 건방진 멘트를 했었다. 흥분되니깐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보니 헛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게 신인의 마음인 것 같다. 지금 신인들 보면 옛날 기억이 나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 이런 느낌 받아본 적이 없어 흥분하고 오버 페이스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기에 신인 선수들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단, 예의를 중요시 했다. 이병규는 "인사는 기본이다. 최근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선수들이 간혹 보인다. 그럴 땐 따끔하게 지적해 바로 잡아주려고 한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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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는 털털한 성격으로 최만호 코치와 손혁 해설위원에게 먼저 다가가 인연을 맺었다. 사진=옥영화 기자 |
고등학교 3학년 때 최만호 넥센 코치와 첫 인연을 맺어 20년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규는 “당시 청소년 대표였던 대전고의 최만호는 정말 유명한 선수였다. 단국대 입학을 앞두고 (최)만호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이 야구하고 싶은 마음이 커 먼저 말을 걸게 됐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화랑기 첫 맞대결에서 최만호를 만났다. 경기 전 이병규는 대전고 더그아웃을 찾아 최만호에게 다가갔다. 이병규는 “오전경기였다. 대전고 선수들에게 최만호가 누구냐고 물었다. 처음 얼굴을 봤는데 170cm의 단신 포수였다. 다가가 ‘네가 최만호냐’라고 물었다. 그런데 말없이 눈빛으로 ‘왜’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바로 ‘나 단국대 가는데 왜 안 오냐? 나랑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대답 없이 그냥 외면하고 가더라”며 껄껄 웃었다.
이병규는 당시 최고의 4번 타자였던 최만호 코치와 같이 야구하고 싶은 마음에 더 큰 소리로 “나랑 같이 야구하자”라고 외쳤다. 이병규는 “최만호는 야구천재다. 빠르고 힘까지 세다. 대학에 와서 만호가 4번을 치고 나는 3번을 쳤다. 함께 야구를 한다는 자체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프로에 입문한 신인 이병규는 한 다리 위 선배인 손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절친이 됐다. 이병규는 “신인들은 숙소에서 생활하는 게 규정이었다. 구리 숙소에서 잠실구장에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경기 전에는 스스로 알아서 야구장에 갈 수 있지만, 경기 후에는 차편이 애매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차는 고사하고 면허증도 없었던 이병규였다. 하루는 일찍 숙소에서 나와 주차돼있던 차를 찾았다. 아직까지 흰색 중형차를 잊지 못한다는 이병규는 “경비 아저씨께 여쭈니 손혁 선배 차였다. 기다렸다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날부로 손혁 선배와 인연이 돼 17년을 함께 지냈다. 아침에 같이 야구장을 가고 선배가 약속이 있으면 나를 데리고 가는 등 사람들이 우리를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붙어 다녔다”라고 말했다.
올 시즌을 마치고 손혁 해설위원의 가족과 함께 평창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길에 이병규는 “17년 만에 첫 여행이었다. 옛날 생각을 하니 우리에게는 다른 추억보다 어디든 같이 다녔던 기억 자체가 추억이었다”라며 손혁 해설위원과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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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는 선수들이 뽑은 주장이라며 선수들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올해 LG는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했다. 그 가운데에는 주장 이병규의 리더십이 작용했다. 선수단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해 기쁨조가 됐던 이병규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선수들이 직접 뽑아줬기에 책임감이 더 크다. 싫은 소리보다 칭찬과 격려를 더 해줘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병규는 “선수들에게 항상 우리는 뮤지컬 배우라고 말한다. 관중들은 이 뮤지컬을 보기 위해 온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뮤지컬 한 편을 하러 온 배우들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2~3만 명 관객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매 경기에서 내 자신을 속이지 않았기에 나는 만족한다. 내가 열심히 했으면 칭찬받고 그렇지 않았다면 질책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야구장에서 열심히 안 하는 선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병규는 선수들에게 야구장에서만큼은 인상을 쓰지 말라고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원하는 결과를 이루자는 생각이었다. 이병규는 “올해 모든 선수들이 밝아졌다. 지고 있어도 이긴다는 생각에 초조해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판을 뒤집다. 매 경기 다른 영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선수들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각오는 없다. 오로지 팀을 위한 마음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병규는 “3할 20홈런을 치겠다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 열심히 뛰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다”라며 “동료들, 후배들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야구장에서만큼은 야구를 즐겼으면 한다. 올해와 같은 분위기를 잇는 것이 내 역할이다. 한번 강팀이 돼 쭉쭉 올라가다 보면 이 장점을 지속시킬
이어 이병규는 “내가 왜 캡틴이겠느냐. 우리 선수들을 지키라고 있는 자리다. 내가 앞장서서 선수단을 이끌어야 한다. 매도 내가 맞아야 한다. 우리 선수들을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고 당연한 것이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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