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1994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 16세의 어린소년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처음으로 올림픽 빙상을 갈랐다. 21년이 지난 2014 소치동계올림픽. 37세로 훌쩍 커버린 그 소년은 올림픽 기수로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선수단 가장 앞에 선다. 악몽같은 올림픽과 질긴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36‧서울시청)의 여섯 번째 도전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소치올림픽 최고의 관심 종목 중 하나다. 금메달에 대한 기대도 높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이상화(25)와 모태범(25), 이승훈(26)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지난 2010 밴쿠버올림픽의 영웅들이다. 그러나 밴쿠버 대회에서 후배들의 영광을 뒤로 하고 이규혁은 또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이있는 전설 이규혁이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한다. 사진=MK스포츠 DB |
남녀 하계‧동계올림픽을 통틀어 역대 최다인 올림픽 6회 연속 출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1991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뒤 1998 나가노, 2002 솔트레이크시티, 2006 토리노, 2010 밴쿠버 대회를 함께 달려온 산 증인이다.
그러나 이규혁은 불운의 남자이기도 하다. 올림픽과 깊은 인연에도 메달과는 지독한 악연이었다. 지난 5차례 도전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도 올림픽 무대에만 서면 좌절을 맛 봐야만 했다. 홀로 스케이트장에 나와 울기도 많이 울었다.
불혹을 앞둔 이규혁은 그렇게 쏟은 눈물을 다시 가슴에 품고 마지막 올림픽에 나선다. 소치 대회에서 500m, 1000m 두 종목에 출전한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세계랭킹은 30위권 밖으로 뚝 떨어졌지만, 그가 가는 길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다.
이규혁은 이미 욕심을 내려놨다. 이번 올림픽은 메달의 부담감을 안고 치른 지난 5번의 올림픽과 달리 즐기는 무대다. 후배들을 위해 대표팀의 든든한 맏형으로 마지막 올림픽을 빛낸다.
이규혁은 “지금까지 올림픽은 항상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출전하면서도 은퇴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을 갖고 은퇴 후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소치올림픽은 ‘피겨여왕’ 김연아(24)의 마지막 은퇴 무대로 떠들썩 하다. 그러나 이규혁은 조용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기수로 나서는 이규혁의 뒷모습을 보며 후배들이 느껴야 할 감동은 존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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