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오매불망 기다렸던 첫 승이었다. 아내는 수고했다고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아내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8년의 묵묵한 기다림 끝에 첫 승을 거둔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우완투수 이창욱(30)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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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거쳐 감격적인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둔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이창욱이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사진=MK스포츠 DB |
2007 신인드래프트 2차 1번(계약금 1억3000만원)으로 SK에 지명된 이후 1승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믿겨지지 않는 감격적인 순간. 이창욱은 경기 종료 후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된다”고 했다.
18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묵묵히 8년을 인내한 이창욱을 만났다. 첫 승의 과정이 극적이었다. 그만큼 축하 전화도 쏟아졌다. 이창욱은 “정말 많은 분들게 연락을 받았다. 전화와 메시지 포함해서 한 30~40명 정도 연락이 왔다”면서 쑥스럽게 입을 열었다.
극적인 승리. 특히 SK는 9회 1사부터 등판한 박희수가 연장 10회까지 소화한 이후 이창욱을 11회부터 올리는 결단을 내렸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경기. 여러모로 부담감이 큰 상황이었다. 이창욱은 “첫 타자(정범모)에게 안타를 맞았다. 그런데 이후 희생번트가 다행히 내 쪽으로 오기도 했고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며 겸손하게 첫 날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의 설명과는 달리 이날 이창욱은 정범모에게 맞은 첫 안타를 제외하면 완벽했다. 사사구와 추가 안타 없이 나머지타자들을 모두 범타로 돌려세웠다.
가장 기뻐했던 사람도, 가장 먼저 떠올렸던 사람도 가족이었다. 이창욱은 “사실 끝나고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기 보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팀에 값진 승리를 첫 승으로 거뒀다는 것이 감격적이었다”면서도 “그래도 가족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냥 좋더라”라며 수줍게 웃었다.남편의 첫 승을 지켜본 아내도 눈물을 쏟았다. 이창욱은 “경기가 끝나고 아내랑 통화를 했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하면서 많이 좋아했다. 눈물도 흘렸다”며 자신만큼 기뻐했던 아내와의 통화내용을 들려줬다.
프로 데뷔 당시 억대의 계약금을 받은 특급 유망주였지만 프로에 올라와 어깨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한 이후 좀처럼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친 이후 다시 기약 없는 재활의 과정을 겪었다. 이창욱은 “그러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어깨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철모르던 중학생 시절부터 만나 10년 간 연애한 아내와 6년 전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슬하에는 각각 6세와 4세의 두 명의 아들도 생겼다.
이창욱은 “일단 긴 시간을 기다려준 구단에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족들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 “가족의 힘이 제일 컸다. 부모님도 정말 많이 나를 믿어줬고 아내도 고생이 많았다”며 지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많다. 일단 남자 아이 2명을 혼자서 키우는 것이 정말 힘들텐데 운동선수 남편이라고 뒷바라지까지 다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그런 내색을 안하고 묵묵하게 믿어줬다.” 운동선수의 여자로서 벌써 십 수년간 옆에 있어준 아내의 노고를 말하는 이창욱의 목소리도 떨렸다.
이제 1군 프로 선수가 됐다. 이창욱의 각오는 무엇일까. 이창욱은 “여전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그런데 안 좋았을때는 도망가는 투구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게 달라진 점이다”라며 “내가 구속이 빠른 선수도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감 있게 던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각오처럼 1군 데뷔전이었던 지난 15일 두산전도 피해가지 않았다. 1⅓이닝 3피안타 1볼넷 4실점(2자책)으로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정면승부를 했다. 17일 첫 승을 거둔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창욱은 “앞으로 1군에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고 빗맞은 타구를 많이 만들어내 맞춰잡는 투구를 할 계획이다. 안타, 안타를 맞더라도 볼넷을 내주면서 피해다니지 않겠다”는 앞으로의
긴 시간 끝에 거둔 첫 승이었으나 들뜨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차분하게 훈련을 모두 소화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이창욱은 인터뷰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다. 솔직하게, 그리고 과장없이 그간의 시간을 말하는 그를 보며 8년간의 인내의 보상이 단지 첫 승이 아니라, 앞으로의 더 많은 승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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