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2014시즌 프로야구는 감독들의 무덤이었다. 9개 구단 가운데 무려 6명의 감독이 시즌 도중 혹은 종료 후 옷을 벗었다.
시즌 초반 김기태 감독(전 LG)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놨고, 시즌 종료 후 김응용(전 한화), 이만수(전 SK), 김시진(전 롯데), 송일수(전 두산), 선동열(전 KIA) 감독이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최악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덤 속에 핀 꽃도 있었다. 3개 구단 감독은 성적을 떠나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살아남았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통합 4연패의 위업을 이루며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우승 청부사로 명성을 이어갔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팀 창단 최초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고, 김경문 NC 감독도 신생 구단 딱지를 떼고 1군 진입 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양상문 LG 감독도 최하위 팀을 맡아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시즌 종료 후 감독들의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포스트시즌의 열기마저 식게 만들었던 감독 교체 후폭풍은 강렬하고 뜨거웠다.
MK스포츠는 2014시즌 프로야구를 결산하면서 극과 극이었던 감독들의 인기를 재조명했다.
⑩ 감독 인기도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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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시즌 프로야구 개막 미디어데이에 나섰던 9개 구단 감독들의 운명은 시즌 종료와 함께 엇갈렸다. 사진=MK스포츠 DB |
▲ 웃으며 남은 자
프로는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 선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로 감독들도 늘 팬들의 관심 대상이다. 사소한 작전 실수 하나라도 팬들의 레이더에 걸리면 도마 위에 오르기 일쑤다. 성적이라도 좋으면 다행. 결국 프로는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프로야구 감독들은 매 시즌 전쟁터에 내놓은 목숨이다.
전장의 승자들만 웃었다. 가을야구 전쟁에 뛰어든 정규리그 1~4위 팀들의 사령탑만 살아남았다. 당연히 팬들의 찬사도 잇따랐다. 상위 4개 구단 감독들마다 그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류중일 감독은 삼성에 4년 연속 통합우승 타이틀을 안겼다. 역대 최초의 금자탑이다. 2011년부터 우승을 싹쓸이 하며 2010년대 삼성 왕조를 건립했다. 과거 해태의 기록을 뛰어넘은 대단한 기록이다. 오승환이 빠진 삼성 왕조를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만든 수장 류 감독을 향한 찬사는 당연한 결과였다.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국제대회 흑역사도 말끔히 지웠다. 류 감독에게는 최고의 한 해였다.
염경엽 감독도 구단의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고 최고의 성과를 냈다. 넥센은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 염 감독의 철저한 작전 야구는 삼성의 아성을 위협했다. 정규리그 1위 삼성과는 불과 0.5경기차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고, LG의 돌풍마저 잠재우고 사상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MVP 후보만 4명(서건창, 박병호, 강정호, 앤디 밴헤켄)을 배출하며 실리도 챙겼다. 왜 ‘염갈량’으로 불리는지 입증한 시즌이었다.
김경문 감독의 지도력도 또 한 번 입증됐다. 신생팀이었던 NC를 무섭게 성장시켰다. 1군 진입 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고,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 외국인선수들의 완벽한 조화로 깔끔한 시즌을 보냈다. NC는 더 이상 ‘아기공룡’이 아니었다. 탄탄한 전력을 갖춘 NC는 언제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기 감독이 탄생했다. 위기의 LG를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맡은 양상문 감독. 승패 –16로 최하위까지 추락했던 LG를 4위에 올려놨다. 무너진 LG를 세우며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이뤄낸 성적은 말 그대로 ‘미라클’이었다. 수많은 악재 속에서도 욕심을 버리고 성적과 리빌딩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양 감독의 리더십은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4개 구단 감독들은 웃으며 2015년 또 다른 도전을 기약했다.
▲ 불명예 퇴장으로 끝난 자
감독들의 무덤. 심지어 성난 팬들은 무덤까지 파헤쳤다. 2014년은 팬심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해였다. 구단은 팬들의 눈치를 보며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무려 6명의 감독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지난 시즌 LG를 11년 만에 가을야구 축제로 이끌었던 김기태 감독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직서를 던졌다. 팬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납득하기 힘든 빠른 자진사퇴 결정에 아쉬움을 내비친 팬들도 있었지만, 남은 시즌을 포기했다는 질책이 쏟아졌다. 당시 김 감독의 충격 해법은 결과적으로 LG의 반등 기회를 만들었다.
김응용 감독과 이만수 감독 등 계약이 만료된 감독들은 재계약 서류도 내밀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은 만년 최하위 한화를 맡아 재건을 꿈꿨으나 오히려 과거 명성에 흠집만 남았다.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정근우와 이용규를 영입하며 변화를 노렸지만, 2년 연속 최하위 성적표는 바뀌지 않았다. 노장의 퇴장은 쓸쓸했다.
이만수 감독도 예정된 퇴장이었다. SK는 시즌 막판 포스트시즌을 노렸지만, 결국 가을야구 초대장은 얻지 못했다. 우승 명가였던 SK의 추락을 방치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만 남았다. 집안단속을 못한 탓이 컸다. 이 감독의 말 한 마디마다 팬들의 독설은 끝이 없었다. 결국 이 감독은 시즌 종료 후 라오스로 떠나 힐링타임을 가졌다.
불명예 퇴진의 중심에는 김시진 감독과 선동열 감독이 있었다. 팬들의 비난 수위는 정도를 넘어서 퇴진 운동까지 벌이는 진풍경을 낳았다.
김 감독은 시즌 종료 직후 팀을 떠났다. 이미 시즌 도중 사직서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을 정도로 예정된 수순이었다. 롯데는 성적 부진과 팀 내분 등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다. 김 감독은 구단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2년 동안 아무 것도 보여준 것이 없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호텔 CCTV 사태’ 등이 터지면서 구단 수뇌부까지 물갈이 됐다. 최악을 넘어선 악몽 같은 한 해였다.
선 감독은 지도자 인생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KIA의 성적은 그 어떤 반등의 기미도 보이지 못한 채 바닥을 쳤다. 선 감독의 사퇴도 당연한 수순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구단은 선 감독의 재신임을 택했다. 여론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오판이었다.
결국 성난 팬심은 재계약에 성공한 선 감독을 다시 몰아냈다. 선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에 장문의 편지로 변화를 호소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팬들을 자극하는 결과만 낳았다. 팬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선 감독은 재계약 발표 일주일도 안 돼 자진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송일수 감독 역시 팬심을 등졌다. 두산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1년 만에 물러났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미라클 두산’의 모습은 없었다. 소통의 부재에 의한 ‘불통 리더십’은 두산의 색깔마저 지웠다. 특히 시즌 막판 ‘져주기 논란’은 송 감독이 물러나게 된 결정적 자충수였다.
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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