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메이저리그에 떠도는 오래된 투정 하나.
‘투수는 야구판의 핍박받는 소수다.’
LA다저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 해였던 1988년 59이닝 무실점의 대기록을 세웠던 전설적인 투수 오렐 허샤이저는 “도대체 투수를 위한 규칙은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팬들의 보는 재미가 첫째인 프로야구는 어쩔 수 없이 지나친 투수의 성장은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투고타저’의 해가 나왔을 때와 ‘타고투저’ 현상이 나타날 때 리그들의 반응 속도는 사뭇 차이가 나는 편이다. 극심한 투고타저가 발생하면 부랴부랴 움직이지만, 타고투저는 최대한 버텨가며 참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 리그들이 스피드업 노력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포지션은 투수다. 그들이 던져야만 시작되는 승부, 그러나 그들이 던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어 ‘12초룰’ ‘20초룰’ 등이 나왔다.
베이스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공을 받은 뒤 20초 이내에 던지지 않으면 볼이다. KBO 로컬룰은 12초다.
개인화된 루틴과 각자의 타이밍이 있는 투수들에게 째깍째깍 초시계는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투수들은 적응해야 했고, 이 룰이 정착한 지금 실전에서 투수가 12초룰 위반으로 볼을 선언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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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의 타석 이탈에 대한 스피드업 규정은 투수의 "12초룰" 전례처럼 엉뚱한 기록 양산의 결과보다는 타자들의 변화와 적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고통을 견디고 장기적으로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규정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MK스포츠 DB |
타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타석을 이탈하면 ‘1회 경고, 2회 투구 지시후 스트라이크’라는 룰이 있었던 지난해를 유명무실한 적용으로 아깝게 흘려보냈던 KBO리그가 이번 시범경기서 경고 없이 자동 스트라이크를 주는 스피드업 스트라이크를 시행하고 있다. 몇 경기 치르지도 못하고 시끄럽다.
지난해 강력하게 시험해 봤어야 했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페널티라면 더 빨리 논의돼야 했다. 이제 개막을 보름 앞둔 시점, 2015야구규칙과 리그의 대회요강이 마무리되는 이번주를 지나 빨라도 다음주에야 경기촉진위원회든 감독자회의든 이런저런 논의와 ‘벼락치기 손질’의 숙제가 닥쳤다.
페널티는 다시 논의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투수가 던지지 않은 볼을 선언당하는 룰은 결국 용납된 전례가 있는데도, 던지지 않은 스트라이크를 선언당하는 룰에는 야구정신, 규칙위반 논란이 다시금 훨씬 거세다.
일단 경기 내적인 페널티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스피드업 스트라이크는 시범경기 첫선 만에 스피드 있게 사라질 위기다.
그러나 원점은 안된다. 어렵게 합의점에 이른 타자의 타석 이탈에 대한 벌칙은 반드시 실시돼야 하고, 또 강력한 형태로 시행돼야 한다.
경기 외적인 페널티로 벌금을 찬성하는 의견도 있고, 강경한 대책으로 경고 누적 후 출장제한의 아이디어도 있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투수들의 엿가락 인터벌이 사라진 것처럼, 타자들의 불필요한 동작이 사라질 수 있을 만큼의 괴로운 페널티가 필요하다.
이순철 SBS해설위원은 “야구는 너무 얘기할 거리가 많아서 한경기를 갖고도 밤새 떠들 수 있다”고 말한다. 마니아에겐 3시간이든 4시간이든 지루할 수가 없는 게 야구다.
그러나 대중에게 경기를 파는 프로야구에게 스피드업은 생존 목표다. 1000만 관중을 모아야하고, 전 경기 TV 중계를
이번엔 타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싶다.
명백한 것은 ‘12초룰’이든 ‘스피드업 스트라이크’이든 ‘7이닝 야구’ 보다는 훨씬 낫다.
야구규칙상 타자는 타석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릴 수 없고, 두발을 타석 안에 두는 것이 정규의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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