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대전) 서민교 기자] 더 이상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책상에 앉아 끊임없이 메모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야신의 트레이드마크’가 사라진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도중 두 가지를 버렸다. 볼펜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경기를 보겠다고 선언했다.
김 감독의 낯선 풍경은 지난 7일 대전 LG 트윈스전부터 시작됐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 도중 서서 경기를 지켜봤다. 연장 11회말까지 가는 4시간48분의 혈투를 끝까지 서서 봤다.
![]() |
↑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올 시즌부터 경기를 서서 지켜보겠다고 선언했다. 사진=MK스포츠 DB |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김 감독을 일어나게 만든 동기는 단순했다.
이날 경기 중에 내린 비 때문이다. 김 감독은 “경기를 보는 데 비가 와서 오른 다리와 바지와 양말이 다 젖었다. 중간에 옷을 갈아입고 양말도 바꿔 신었다. 그리고 다시 왔더니 의자 등받이가 난로를 막아 춥더라. 그래서 서서 봤다. 서 있으니까 따뜻하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진짜 이유로는 황당했다. 김 감독은 “내가 열 받아 서는 줄 알았을 거야. 근데 추워서 서서 봤어”라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후유증도 있었다. 김 감독은 “오래 서 있으니까 허리가 아프더라”고 말했으나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한 번도 서서 경기를 지켜본 적이 없던 김 감독은 오히려 서서 보는 매력에 빠졌다. 앉아서 보는 것보다 장점이 더 많았기 때문. 김 감독이 “오늘부터 서 있을 거야”라고 말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 감독은 “서서 경기를 보니까 더 잘 보이더라. 더그아웃이 낮은 데는 사인이 안 보여 설 때도 있는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서서 보니까 메모를 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메모를 하니까 (경기 흐름을 읽는 데) 한 템포 늦다는 것을 느꼈다. 잠깐 앉았더니 경기가 잘 안 풀려 다시 섰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우연이 만든 김 감독의 파격적인
한화 사령탑을 맡은 뒤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는 김 감독이 먼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한화도 달라질 수 있을까.
[min@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