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대구) 이상철 기자] 12일 대구구장에서 열릴 프로야구 삼성-KIA전에서 ‘몰수승’이 나올 뻔했다. 경기 시작 2시간여를 남겨놓고 원정팀 KIA 선수단이 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은 것. KIA의 발목을 잡은 건 엉뚱하게 도로 통제였다. 규정에 따라 천재지변이 아니고선 상대의 몰수승으로 기록된다. KIA로선 허무하게 6연패의 늪에 빠지는 위기였다.
사정이 있었다. 이날은 제7회 대구·경북 세계 물 포럼의 개막일이었다. 21세기 물 문제를 토론하는 장으로 1997년부터 3년마다 열리고 있다. 한국에선 첫 개최였다. 의미있는 국가적인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 등 귀빈이 참석했다.
귀빈이 몰리니 자연스레 대구 곳곳의 도로가 통제됐다. 하지만 이 ‘중요한 정보’를 누구도 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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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감독은 예상치 못한 도로 통제로 40분 가까이 발만 동동 굴렸다. 사진=MK스포츠 DB |
공교롭게 세계 물 포럼의 개회식이 오후 2시 대구 엑스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프로야구 KIA-삼성전과 경기 시작 시간과 같다.
개회식이 끝나기 전까지 도로 통제가 풀릴 수 없다는 경찰의 주장에 KIA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이대로라면, 경기 시작 시간에 갈 수가 없고 몰수패를 해야 했다. 김기태 감독은 “그냥 야구장까지 걸어가자고 할 뻔 했다”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김기태 감독과 KIA 선수단 만이 아니었다. KIA를 기다리는 삼성도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문의하기도 했다. 규정에 따라 몰수승이 주어지나 꺼림칙했다. 류중일 감독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KIA 선수단 버스의 위치를 체크했다.
발만 동동 굴리던 KIA는 40여분의 기다림 끝에 버스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조계현 수석코치가 직접 나서 경찰과 ‘대화’로 문제를 푼 것. KIA는 오전 11시53분이 돼서야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삼성 선수단도 그제야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을 경우, 워밍업이나 타격 연습도 못할 뻔 했다. 몸을 안 풀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식겁한 상황을 넘긴 KIA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프닝치고는 웃고 넘길 ‘추억거리’는 아닌
더그아웃에 짐을 풀고서야 김기태 감독도 마음이 놓였다. 김기태 감독은 “오늘 아침 기분이 좋았는데 (도로 통제로)혈압이 상승했다. 액땜이라고 생각해야겠다”라며 가벼운 농담과 함께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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