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처음이다. 오지환을 유격수라고 말하긴….”
1994년 LG 트윈스가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할 때 신인왕은 유격수 유지현(44)이었다. 빠른 발과 선구안, 완벽한 수비. 이후 골든글러브를 2회 수상한 LG의 레전드가 됐다.
유지현 LG 수비코치가 신인왕을 받은 뒤 21년이 흘렀다. 유 코치가 처음 ‘유격수’라는 포지션 호칭을 부른 선수는 오지환(25‧LG)이었다. 유 코치는 “내가 오지환에게 유격수라고 말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젠 유격수 같아 졌다”고 말했다.
↑ LG 오지환이 지난 2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7회초 무사 1루. kt 이대형의 번트때 1루주자 심우준이 2루에서 아웃당하고 있다. 사진=천정환 기자 |
더뎠다. 신인 시절부터 LG 유니폼을 입고 주전을 맡아 엄청난 부담을 어깨에 짊어졌다. 기대는 실망을 더했다. 유격수는 내야 포지션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 어색한 유격수를 프로 데뷔와 함께 맡으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실책은 그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오지환을 유지현이 인정했다. 프로 7년차가 되는 해다.
지난 28일 잠실 kt 위즈전을 앞둔 라커룸 앞. 유 코치는 오지환에 대한 수비 이야기가 나오자 끊지 못했다. “오지환이 유격수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지환은 아직…”이었던 사람이다.
오지환은 지난해부터 수비에 눈을 떴다. 올해는 완연한 안정세다. 매년 20개 이상을 기록했던 실책은 올해 49경기에서 단 4개만 기록했다. 이 중 치명적인 실책은 없었다. 그러나 유 코치의 눈은 냉정했다. 유 코치는 “실책의 개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유격수의 기준은 실책의 숫자가 아니다”였다.
유 코치가 인정한 오지환의 수비는 조금 달랐다.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오지환은 화려한 유격수다. 타고난 재능이 그렇다. 그러나 유 코치는 화려한 수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오지환이 올해 달라진 것은 여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비가 있다. 그냥 보면 잘 모를 어려운 바운드를 쉽게 잡아낸다. 예전에 ‘강강강강’이었다면, 지금은 ‘강강약약’을 할 줄 안다.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유 코치가 오지환을 유격수로 인정한 이유는 단지 여유가 아니다. 개인에서 팀으로 넘어간다. 유격수는 내야수비의 핵이다. 부담이 가장 많이 가는 어려운 자리다.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고 잘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지환은 예전에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선수다. 그런데 올해는 오지환이 동료들을 돕고 있다. 그게 유격수다. 이젠 빈자리를 채워주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많은 곳을 커버하고 있다.”
아직 완벽한 유격수는 아니다. 유 코치는 “모든 면에서 너무 열심히 한다”고 했다. 장점도 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단점이기도 하다. 유 코치의 무게는 단점에 쏠렸다.
“유격수는 체력적 부담이 큰 자리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요령이 필요하다. 힘을 줄 때와 안 줄 때가 있어야 한다. 효율성의 문제다. 오지환은 너무 열심히 해서 자신도 모르게 체력이 떨어진다. 쉽게 처리해야 할 타구는 쉽게 처리해야 한다. 타격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배팅 타이밍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오지환은 아직 기대치에 못 미친다. 이유는 수비가 아닌 타격이다. 올 시즌 타율 2할5푼4리에 머물고 있다. 리드오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타력이 아닌 출루율이다. 3할6푼7리의 출루율은 부족하다. 삼진 43개로 팀 내 두 번째로 많다. 오지환이 슈퍼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선 충족을 시켜야 할 과제다.
오지환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수비에 중점을 뒀다. 오래 걸렸다. 이제 완성도가 생겼다. LG의 ‘레전드 유격수’도 인정한 ‘현재의 유격수’가 오지환이다. 더 이상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유망주가 아니다. 스스로 무게를 짊어져야 할 때다.
↑ LG 유지현 수비코치가 오지환에 원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