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놀랍도록 강하고 멋진 공을 뿌릴 수 있는 그들의 어깨는 다치기 쉽고 닳기 쉽다. 어렵게 만들어낸 좋은 투수를 건강하게, 또 오래 쓰기 위해서 현대 야구는 끊임없이 투수의 혹사 기준을 계산한다.
미국의 의학저널이 투수의 부상 방지를 위해 권고하는 휴식일은 30구~45구 투구 시 하루, 45구~60구 투구 시 이틀이다. 60구~75구를 던졌을 때는 사흘의 휴식, 90구 이하를 던졌을 때는 나흘의 휴식이 적절하다는 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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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적인 마운드 운용을 하면서도 투수들을 "혹사"의 위험에서 지켜내는 관리에도 성공해야 하는 것이 각팀 벤치의 미션이다. 사진=MK스포츠 DB |
임상적으로 투수의 근력은 75구를 던진 이후부터 급격하게 떨어진다. 투수가 초반과 비슷한 세기의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훨씬 무리하게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무리하는 동작’의 구간이 잦아질수록 투수의 부상 위험은 늘어난다. 즉 한번 등판할 때 마다 (제 몫을 해낸다고 했을 때) 75개 이상의 공을 던져야 하는 선발 투수들은 상시적으로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불펜 투수들은 적절한 관리를 통해 건강하고 오래 쓰기에 더욱 유리한 자원이다. 통상 ‘무리한 동작 구간’까지 가지 않고도 등판을 끝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휴식일과 연투 총 투구수에서 ‘혹사’가 걱정되는 정도까지 쓰이는 불펜 투수들의 케이스를 보면 상당히 안타깝다.
불펜 투수들의 혹사 여부를 판단할 때는 세 가지 정도를 관찰해야 한다. 투구수 대비 휴식일, 당일 투구수, 그리고 연투했을 경우의 총 투구수다. 일반적으로 30구를 넘겼을 경우 하루 휴일이 필요하고, 비록 당일에는 30개 미만의 투구를 했지만 이틀 연투의 총 투구수가 30구를 넘겼을 때도 역시 하루의 회복기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계산은 투수의 근력과 피로도, 수많은 부상 투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의학계의 해답이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투수들을 상황에 맞게 등판시키면서 건강하게 관리해내는 것은 각팀의 미션이 된다. 각 투수마다 회복력과 근력이 다르다고 보고 개개인의 투구수나 휴식일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팀들이 많다. 그런 특수한 판단이 근거를 갖기 위해서는 각 투수들의 투구수 대비 휴식일에 관한 정확한 관찰과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투수의 어깨와 피로도, 회복능력에 관한 적절한 이해가 있다면, 불펜을 운용할 때 단순히 날짜 계산만 할 필요가 없다. 투구수와 회복일을 기준으로 유연하게 투수를 쓸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당일 투구수가 적고 연투기간 중 총 투구수가 30~40개로 관리된다면 사흘까지 연투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잦아서는 안 되고 등판 후 적절한 휴식기가 보장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셋업맨이 30구 이상의 많은 공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투구수가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많이 던졌을 때 그만큼 오랜 회복기를 줘야 한다는 게 관리의 포인트다.
그래서 경기의 흐름에 따라 강력한 불펜을 공격적으로 가동하는 마운드 운용과 철저하게 투수의 어깨를 보호하는 관리는 분명히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확실한 기준과 탄력적인 유연성으로 ‘경기를 이기는 관리’를 해내야 하는 것이 각팀 벤치의 미션이라 하겠다.
꼼꼼한 계산과 스마트한 기용이 있다면 짧게 던지는 불펜 투수들은 일주일에 최대 4경기를 쓸 수 있다. ‘혹사’ 걱정을 무릅쓰고 써봤자 일주일에 5경기를 등판시키는 것인데, 한 경기의 차이를 위해 소중한 투수 자원의 어깨를 담보 잡히는 일은 많이 아까울 수 있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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