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나는 ‘등대지기’가 된다

↑ <전북 군산> 100년이 넘은 어청도 등대. 사진촬영 오주환

100년 묵은 산삼이 아니다. ‘100년 묵은 등대’다. 요즘 등대의 변신, 끝내준다. 대놓고 주무시라며 ‘속’을 내주는 등대 스테이가 등장했는가 하면 박물관이나 스카이워크를 끌어들여 변신을 시도하는 트랜스포밍 등대도 있다. 8말9초(8월말~9월초), 어디로 갈지 참으로 애매한 시기. 그래, 잘 걸렸다. 이 참에 100년 묵은 등대 나들이다. 산삼으로도 못고친다는 마음, 등대로 힐링 치유나 하고 오자.
◇ 100대 1 넘는 숙박경쟁률…거문도 100년 등대
‘100대1’. 수능 경쟁률? 아니다. 등대 속에서 하룻밤 묵으려는 숙박 경쟁률이다. 왠만한 자연휴양림 여름 성수기 살벌한(?) 경쟁률을 방불케 하는 곳, 놀라지 마시라. 등대다. 기록의 등대가 있는 곳, 여수 앞바다 거문도다. 날씨 예보를 들을 때마다 ‘남해 동부 먼 바다’라고 불리는 곳이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114.7km, 제주에선 86km 떨어진 곳. 배로 2시간30분 거리다.
거문도 등대가 있는 곳은 남쪽 수월봉(196m)이다. 갯바위 지대를 지나 1km 동백숲 길을 따라가면 거문도 등대다.
거문도 등대는 억울하다. 첫 불을 밝힌 시점은 1905년. 1903년에 불을 밝힌 인천 팔미도 등대에 아쉽게 밀려 ‘대한민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놓친 게다. 하지만 ‘남해안 최초’라는 수식어는 달고 있다. 무려 110년 묵은 등대인 셈이다. 2006년부터는 새 등대가 길을 비추고 있다. 등대 끝 지점이 관백정(觀白亭)이다. 거문도의 또 다른 명물 ‘백도(白島)’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남해 바다를 한눈에 품을 수 있는 등대 전망대 정상까지는 33m. 힘들어도 기어이 올라가 봐야 그 아찔한 풍광, 제대로 품을 수 있다.
등대 스테이 장소는 지척에 있는 등대지기의 관사. 깔끔하게 꾸려진 펜션 같은 느낌이다. 이 곳에 최대 8명의 인원이 하룻밤을 묵으며 등대지기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사실 등대 스테이가 시작된 건 지난 2006년 7월부터다. 행운의 주인공은 매일 딱 1세대씩. 평일에도 최소 20~30팀이 추첨을 기다린다. 여름 성수기 말미에는 평균 100대1의 살벌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거문도 등대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별보기, 정말이지 하늘 ‘별따기’다.
▶ 거문도 등대 즐기는 Tip = 숙박비 없다. 공짜다. 이용 신청은 희망일 2주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yeosu.mof.go.kr)에 하면 된다. 거문도 여행하면 백도와 거문도 등대만 생각하면 오산. 백미는 걷기다. 삼호교를 건너 유림해수욕장~목넘어~거문도등대 코스는 차가 다닐 만큼 큰 길이어서 산책하 듯 다녀올 수 있다. 제대로 된 섬 산행을 하고 싶다면 덕촌마을에서 불탄봉(195m)~보로봉(170m)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강추. (061)666-0906.
◇ ‘반짝’ 등대 스테이 팔미도·가덕도 등대
두말 필요없는 진정한 최초의 등대 인천 팔미도. 1903년 4월 만들어졌고 불을 밝힌 게 같은 해 6월 1일이다. 역사만 113년. 까마득하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팔미도까지 약 45분. 선착장에서 등대가 있는 정상까지 10여 분이니, 찾기도 쉽다. 섬 정상에는 등대가 두 개다.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왼편에 보이는 작은 게 ‘원조’다. 옛 등대 뒤로 새 등대가 있다. 새 등대는 현대식이다. 팔미도 등대 탈환 당시 상황과 인천 상륙작전을 재현한 디오라마 영상관 쯤은 기본. 실미도, 무의도, 영종도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마련돼 있다.
울창한 소사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힐링코스도 9월초, 딱 지금 가기 좋다. 이 곳이 뜬 건 인천시가 깜짝 이벤트로 진행하는 팔미도, ‘아빠와 등대에서의 하룻밤’ 프로그램 덕. 이미 한 차례, 관광주간을 맞아 지나갔고, 겨울이 오기 전, 가을 무렵에 한 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다. 눈 크게 뜨고 있다 신청하면 된다.
100년 묵은 등대 스테이 얘기에 부산광역시 가덕도 등대(강서구 가덕해안로)를 빼놓을 수 없다. 가덕도 등대가 첫 불을 밝힌 시점은 무려 106년 전인 1909년 12월. 2002년 새 등대가 세워질 때까지 인근 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에게 희망의 빛이 돼 주고 있다.
단층 구조에 우아한 외관이 돋보이는 등대 출입구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압권. 등대 건물 역시 역사적·건축학적 가치가 높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돼 있다. 등대 스테이 포인트는 등대 아래쪽 100주년 기념관. 등대 스테이, 숙박 체험과 함께 등대 기념관 관람까지 가능하니 이 곳에 둥지를 트고 나들이를 하면 된다. 가덕도등대 외길을 따라 나오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마을 ‘외양포’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전체가 군사기지로 사용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광복 70주년인 올해 안에 꼭 한번 가보실 것. 지척에 있는 송도해수욕장의 랜드마크 스카이워크도 꼭 찍어야 할 포인트다.
▶ 팔미도·가덕도 즐기는 Tip = 초가을 여행의 대표 코스가 팔미도다. 인천종합어시장과 개항장문화지구, 답동성당 등을 엮어 멀티로 즐기시라. 여행 문의는 인천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32)440-4045. 부산 가덕도 등대 스테이는 가덕도 등대(051-971-9710)로 직접 하면 된다.

▷100년 등대 핫스폿

1. 울산 울기등대 구 등탑
- 울산 12경의 하나인 대왕암 송림은 해금강에 버금가는 절경으로 꼽힌다. 울기등대는 이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해안 산책로 끝자락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등대. 일제 강점기인 1906년 3월 첫 점등. 울기등대와 함께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꼭 둘러보실 것. 울산시청 관광진흥과 (052)229-3893
2. 울진 죽변등대
- 울진군 죽변곶은 포항 호미곶 다음으로 육지가 바다로 돌출한 지역이다. 용의 꼬리를 닮아 ‘용추곶’이라고도 한다. 1910년 점등. 팔각형 구조로 새하얀 몸체를 자랑하는 죽변등대는 높이 약 16m다. 죽변등대 (054)783-7104
3. 진도 하조도등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둥지를 트고 있다.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의 높이는 해수면 기점 48m, 등탑 14m에 달한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조도군도 일대의 섬들이 절벽 바위와 어우러져 아득한 모습을 연출한다. 1909년 첫 점등. 진도군청 관광문화과 (061)540-3408
4. 군산 어청도등대
- 어청도등대는 1912년 3월 1일부터 바다를 향해 희망의 빛을 쏘아내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륙진출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웠다고 한다. 어청도에는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있다. 어청도 항로표지관리소 (063)466-4411
[신익수 여행·레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