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라고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5일 방영됐던 최신 회차는 5.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인 안정환, 이을용, 이운재가 출연하나,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접었던 꿈을 이루려 도전하는 젊은 축구선수들이다. 축구미생들의 완생 도전기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축구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실패로 좌절한 이들이 다시 힘을 모아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건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그만큼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소재라는 이야기다.
그 같은 선수들이 이 땅에 수없이 많다.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유소년까지. 축구선수를 꿈꾸며 공을 찼지만,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은 험난하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나 점점 폭은 좁아진다. 낙오자가 발생하기 마련. 다른 방법을 모색하거나 다른 길을 택한다.
그들이 한데 모인다. 청춘 FC 같은 팀은 여럿 있다. 알게 모르게. 그리고 그 가운데 통쾌한 한방을 쏘아 올리기도 한다. 그 같은 일이 실제 벌어졌다. 올해 중둥축구에서. 10대다. 너무 어려서부터 인생의 쓴맛을 봤던 청소년들, 모두가 모르거나 무시했던 그들이 파란을 일으켰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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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수원삼성 블루윙즈 천안센터 U-15팀의 김경일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김경일 감독 제공 |
한 해 동안 각 급별로 많은 축구대회가 열린다. 전국 초중고리그 외에도 대통령배, 탐라기, 무학기, 금강대기 등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규모가 큰 대회가 춘,추계 축구연맹전이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장이다.
참가팀이 100개를 넘는다. 올해 춘계대회에 149개 팀이, 추계대회에는 113개 팀이 출전했다. 프로산하 유스팀은 물론, 학원축구에 클럽축구도 참가해 몸집이 크다. 그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끈 건 충남 수원삼성 블루윙즈 천안센터 U-15팀이다. 춘계대회에 이어 추계대회에서도 4강에 오르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회 최대 이변으로 신선한 돌풍이었다.
긴만큼 부르기도 쉽지 않은 이 팀은 작은 클럽이다. 역사도 짧다. 지난 2013년 4월 천안 이스트 FC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2014년 9월 지금의 팀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로 구성됐다. 냉혹한 현실의 표현을 쓰면, 비주류였다. 또래에 비해 실력이 월등하지도 않았다. 기본기도 부족했다. 기존 축구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중학교 진학도 쉽지 않았다. “육성반이 아닌 보급반 출신이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철도 들지 않은 아이들에겐 첫 시련이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축구선수의 꿈이었다. 태어나 서울에서 컸던 아이들이 그 꿈을 계속 꾸고 싶어 천안행을 택했다. 마지막 팀, 종착지였다. 그만큼 다들 절박했다.
작은 클럽이다.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다. 김경일 감독이 2년 전 클럽을 만들 당시 인원은 고작 7명이었다. 11명이 한 팀을 이루지도 못할 정도. 알려지지 않고 이제 갓 탄생한 팀에 선뜻 노크할 이는 많지 않다. 김 감독은 발품을 팔았다.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리고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하나둘씩 늘었다. 그 해 동계훈련 멤버는 20여명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팀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들을 향한 시선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 대회에 나가도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그라운드에서 옛 친구를 만나는 게 그리 반갑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위축이 되는 건 그라운드 안의 선수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의 학부모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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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수원삼성 블루윙즈 천안센터 U-15팀은 춘,추계 한국중등(U-15) 축구연맹전에서 3위에 올랐다. 사진=김경일 감독 제공 |
아이는 매일 보는데도 몰라보게 큰다. 신장도 크고 체격도 커진다. 또한, 잘 배우면 실력도 쑥쑥 늘어난다. 김 감독의 지도 아래, 어린 미생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일취월장이다.
중등축구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다. 김 감독은 학원축구에 지도자 이력이 짧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클럽축구를 가르쳤다. 그 바닥에서 그의 지도력은 꽤 유명했다.
프로 통산 24경기 출전. 무명선수? 아니다. 그는 비운의 스타다. 부상으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을 뿐. 윤정환, 고종수를 잇는 천재 미드필더로 평가 받으며, 1990년대 후반 광양제철고를 고교축구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의 고교 시절 스승이 기성용의 아버지인 기영옥 광주축구협회 회장 겸 광주 FC 단장이다. 1999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개최한 U-20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함께 뛴 멤버가 이동국, 설기현, 송종국, 김은중, 김용대, 박동혁 등이다. 프로에서도 지도자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천안축구센터라는 훌륭한 인프라도 한 몫. 이들은 주중 천안에서 학업과 병행하는데, 합숙소와 훈련시설이 모두 천안축구센터에 있다. 맨땅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축구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푸른 잔디 위에서 축구공을 찰 수 있다.
김 감독은 “처음 왔을 때 기본기는 부족했다. 그러나 다들 ‘제2의 꿈이자 마지막 꿈’을 꾸는만큼 절실했다. 열정도 가득했다. 매일 열심히 운동했다. 다수가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이 되니 기량 향상과 함께 팀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고등학교팀과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력을 길렀다. 자신감이 생기니 실력도 부쩍 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기술 훈련은 배울수록 늘기 마련이다. 그러나 축구에서 더욱 중요한 건 정신력이다. 정신까지 비주류여선 안 된다.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건 ‘축구판에서 일등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노력하면 다 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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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고의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프로에서 꽃을 피지 못했던 김경일 감독. 충남 수원삼성 블루윙즈 천안센터 U-15팀을 이끌고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이상철 기자 |
어느덧 충남 수원삼성 블루윙즈 천안센터 U-15팀은 45명까지 늘었다. 언감생심. 조촐했던 초창기와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한 경기라도 제대로 뛰고 싶던 선수들은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겨울 속초에서 동계훈련서 연습경기 무패를 하며 심상치 않더니 춘계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그리고 추계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별한 선수 없는 특별한 팀은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훌륭했다.
“거기에 애를 왜 보냈냐”라는 다른 학부모의 말에 이 팀의 학부모는 벙어리처럼 입술을 꾹 다물기만 했다. 지금도 입을 떼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게 됐기 때문에. 이 팀을 바라보는 시선도 과거처럼 차갑지만 않다.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의 꿈은 프로축구선수다. 오르지 못했던 계단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다소 돌았으나 그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중학교 3학년생 13명의 진학은 K리그 산하 유스팀 등으로 일찌감치 결정됐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더 이상 축구공을 차기 어려워 꿈을 접을 위기에 처했던 애들이었다. 스카우트 제의까지, 그 동안 받지 못한 관심을 처음으로 받게 됐다. 기막힌 반전이다.
누구보다 가슴 벅찬 건 김 감독이다. 맨땅에 헤딩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는 “어느 분야든 잘 하는 아이들은 좋은 팀에 간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비주류다. 재능이 있어도 그럴 여건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주류가 될 수 있다. 축구는 1명이 하지 않는다. 11명이 함께 한다. 특별한 선수 없이도 특별한 팀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 세상에는 어린 미생이 참 많다. 천안 지역 아동양육시설 소속 2명이 이 팀에 있다. 지인의 소개로 김 감독이 사비를 털어 가르치고 있다. 재능은 있지만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지 못했던 그 두 명은 김 감독의 지도 아래 정식축구선수가 됐다. 그리고 춘,추계대회 돌풍에 일조했다.
김 감독은 “나는 교육자다. 아이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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