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천공항) 윤진만 기자] 김종혁 국제심판(32)은 10월23일 K리그 대전-부산전을 관장하러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윤광열 국제심판(39)이었다. 선배가 다짜고짜 ‘우리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맡는다’고 말했을 때, 김종혁 심판은 ‘거짓말 말라’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속는 셈 치고 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배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5일 결승 1차전 장소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김종혁 심판은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당시 감정을 떠올렸다. 대기심 김희곤 국제심판(30)은 “어제 생일이었다. 너무 큰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배정이었다. 9월16일 알아흘리-나프트테헤란간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마치고, 김종혁 심판, 윤광열, 정해상 부심(44) 김희곤 대기심은 ‘올 한 해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김종혁 심판은 “FIFA 심판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랍샨 이르마노프(우즈베키스탄)와 벤 윌리엄스(호주), 알리레자 파하니(이란) 중 두 명이 속한 그룹이 두 번의 결승전을 나눠 관장할 줄 알았다. 마음을 비웠다. 우리한테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 2015 AFC 아시안컵 중국-호주간 8강전을 앞둔 한국 심판 트리오. 왼쪽부터 윤광열 김종혁 정해상 심판. 사진(호주 브리즈번)=AFPBBNews=News1 |
하지만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내용이 담긴 메일이 날아왔고, 그들은 약 50일이 지나 그 멤버 그대로 다시 두바이를 밟았다.
당시에는 8강전이었지만, 이번엔 알아흘리(UAE)와 광저우헝다(중국)간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이다. 한국 심판진이 마지막으로 결승을 밟은 시즌은 권종철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휘슬을 문 2002-03이었다. 이후 12년의 공백이 있었다. 전북현대, 포항스틸러스, 성남일화, 울산현대, FC서울 등 K리그 팀들이 연달아 결승 문을 열면서 한국 심판진에겐 결승전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 국제축구연맹 규정에 따라 같은 국적의 구단과 심판은 한 무대에 설 수 없다. 정해상 심판은 “팀과 심판의 관계는 ‘아이러니’다. 우즈베키스탄, 바레인 심판들이 (한국 팀) 덕을 많이 봤다”고 웃으며 “이번엔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고 했다.
↑ 2013년 3월13일 AFC 챔피언스리그 알나스르-알아흘리전에서 레오나르두 리마 다 시우바에게 퇴장을 명한 김종혁 주심. 사진(UAE 두바이)=AFPBBNews=News1 |
이번 대회의 경우 결승에 오른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을 제외하고 호주, 일본, 바레인, 말레이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심판조가 결승전 관장 자격을 얻었다. 전북현대가 K리그 팀 중 마지막으로 8강에서 탈락해 한국 심판진도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축구연맹의 결정은 ‘김종혁조’ 1차전, 우즈베키스탄의 ‘랍샨조’ 2차전 배정이었다. 여기에는 실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김종혁 심판은 “아시안컵, FIFA U-20 월드컵, AFC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기회가 온 것 같다”고 자부했고, 윤광열 심판은 더 구체적으로 “종혁이가 파울 지점 접근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많은 점수를 얻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김희곤 대기심 김종혁 주심 윤광열 정해상 부심. 2015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을 관장한다. 사진=윤진만 |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아시아 축구계의 모든 시선이 쏠리기에 부담감이 상당할 테다. 지난시즌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월드컵 주심 니시무라 유이치(일본)가 웨스턴시드니원더러스와 알힐랄간 결승 2차전에서 실수한 뒤, 올해 아시아 무대로 돌아오지 못한 전례도 있다. 김종혁 심판은 “(정)해상 선배님도 경력이 많으신데 메이저대회 결승전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나도 FA컵 결승전은 맡았지만, ACL 결승전은 처음이다. 당연히 부담감이 있다. 나 하나 잘못될까 싶어 걱정하는 게 아니라 후배 심판들, 나아가 대한민국 심판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까 하는 데서 오는 부담이다. 최대한 긴장을 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광열 심판은 “돈과 명예가 따라오기에 각 팀이 ‘올인’하는 경기다. 우리도 그것에 맞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슴은 쿵쾅거리는 눈치지만, 이들은 좋은 경기를 할 자신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심판계에서 좋은 경기란 경기 중 충돌, 오프사이드 논란과 같은 핫 이슈가 나오지 않은 경기를 일컫는다. 더 줄여 ‘논란 없는 깔끔한’ 경기다. 이들은(김희곤 대기심 제외) 아시안컵 8강 중국-호주전을 담당한 적이 있어 광저우헝다를 어느 정도 파악했고, 올 시즌 알아흘리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모래바람을 맞은 적이 있어 경기 운영에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전망했다. 정해상 심판은 “아시안컵 경험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이 많고 실력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 2015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포스터 |
김종혁 주심, 윤광열 정해상 부심은 대한축구협회가 야심 차게 기획한 ‘월드컵 트리오’의 대표주자로 2018러시아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달린다.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하는 것도 월드컵 참가 여부와 연관했다. 브라질월드컵 심판 선정 과정을 비춰볼 때, FIFA는 내년 3~4월 50여 개 조의 예비 명단을 발표하고, 추후 최종 20여 개 조를 추리리라 짐작한다. 정해상 심판은 “이 한 경기를 관장한다고 경쟁자보다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 이어 어느 정도 우리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결승전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종혁 심판은 “이 한 경기로 FIFA 월드컵 예비명단 포함 여부가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경쟁할 것”이라고 각오를 말했다.
두바이 출국 전 윤광열 심판은 여기에 묵직한 울림을 더했다. “평가 점수, 실력만으로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자신한다. 다만 각국의 축구 정치가 개입한다면 장담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더 많은 관심, 더 탄탄한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力說)이었다.
↑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과정일 뿐, 진짜 목표는 2018러시아월드컵이다. 사진=윤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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