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B조예선 일본전)
‘160km 속구와 140km 변화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투수. 차라리 속구를 노려 쳐야 하고, 빠른 볼카운트에서 적극적으로 승부해야 한다.’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의 개막전 맞상대 오오타니 쇼헤이(21·닛폰햄)에 대해 한국 타자들은 꼼꼼한 분석과 연구를 했다. 공략법을 쥐고 들어선 타석에서 각오한 공과 만났고, 계획대로 빠른 타이밍에 적극적으로 배트를 돌렸다. 그러나 뜻대로 쳐낼 수 없었다. 스물한 살 일본의 에이스는 너무 좋은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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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일본전에서 7안타 무득점에 그치며 영패했지만, 김현수-이대호-박병호가 안타를 기록하면서 중심타선의 ‘위압감’을 지켜낸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박병호는 유일한 멀티히트와 몇 차례의 호수비로 빅리그가 탐내는 야수의 가치를 보였다. 사진(삿포로)=천정환 기자 |
일본과 견주어볼 때, 마운드의 열세는 각오한 대회다. 다만 한국은 힘 있는 자기스윙을 할 수 있는 타선의 파워에서 기대를 걸 만한 전력인데, 역시 타선을 믿어야 하는 팀에겐 ‘경기 감각’과 ‘페이스’가 피할 수 없는 변수다.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타자들의 경기 감각과 페이스가 아직 많이 떨어져 보인다.
이날도 결국 ‘예비 메이저리거’ 박병호와 한국시리즈를 뛴 김현수, 오재원 등 두산 타자들의 타이밍이 그나마 괜찮았고 일본시리즈 MVP 이대호가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감을 보였을 뿐, 정규시즌을 끝낸 지 근 한 달째인 한화 롯데의 타자들은 제 페이스가 아니었다.
곱씹어볼수록 안타까운 것은 지난주 쿠바와의 슈퍼시리즈 두 경기다. 기대 이하로 평범한 구속의 투수들을 상대하면서 결국 우리가 원했던 실속 있는 모의고사를 치르지 못했다. 타자들이 빠르게 경기 감각을 되살리고 속구에 적응해보지 못한 채 삿포로에 오고 말았으니.
오오타니를 흔들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찬스는 5회 무사 1,2루였다. 여기서 7번 허경민이 번트를 제대로 대지 못한 채 거푸 파울을 낸 뒤 삼진으로 물러난 것은 가장 아픈 장면이 됐다.
사실 150km가 넘는 속구를 뿌려대는 투수에 맞서 번트를 대는 일은 참 어려운 미션이다. 앞선 이닝까지 우리 타자들이 오오타니의 공을 비슷한 타이밍으로라도 쳐내고 있었다면 우리 벤치의 선택도 달랐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타선은 4회까지 그저 노히트를 면한 수준으로 완벽하게 눌리고 있었으니 그 장면에서 번트는 대안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힘들었어도 허경민이 집중력 있게 해낼 수 있는 미션으로 봤는데, 좀 경직돼보였던 타자가 자신감 있는 동작을 만들지 못하면서 번트 작전은 흐름을 끊는 ‘대실패’가 됐다.
앞선 2회 일본 8번 히라타의 타구가 그의 수비범위에서 베이스를 맞고 튀어나가면서 선제 결승 2루타가 됐던 것이 숨은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책이 아니었고 불운이 깃든 장면이었지만, 야수 스스로는 대시에도, 후속 플레이에도 아쉬움을 느낄 수 있던 장면이었다. 국대 경험이 부족한 허경민이 혹시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이후 제 플레이를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 타자들은 후반에 뚜렷이 적응력을 보였다. 오오타니 못지않게 위력적인 속구를 가진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 마쓰이 유키(라쿠텐)의 공에는 어느 정도 타이밍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박병호 김현수 이대호
비록 쓴맛을 본 개막전이지만, 이 경기가 독하게 먼저 맞은 ‘면역주사’가 되어 11일부터 대만에서 이어질 남은 예선경기에서는 한국 타자들이 제 기량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