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더 이상 한국 야구대표팀에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맏형의 빈자리. 이젠 어른으로 성장한 ‘빅보이’ 이대호(33·소프트뱅크)가 든든히 맡는다.
지난 8일 일본 삿포로돔 일본과의 개막전 0-5 치욕의 영봉패. 그리고 사흘 뒤 대만 타오위안구장으로 건너간 11일 도미니카공화국과의 2차전 6회까지 0-1로 뒤진 15이닝 연속 무득점 수모. WBSC 프리미어12 초대 대회의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악의 참사 위기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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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대만 타오위안 야구장에서 "2015 WBSC 프리미어12" 대한민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B조 2차전 경기가 열렸다. 7회초 1사 2루. 이대호가 투런포를 날리고 있다. 사진(대만 타오위안)=천정환 기자 |
‘이승엽이 있었다면….’
하지만 더 이상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긴 이승엽은 없다. 필요할 때 꼭 한 방을 터뜨리며 해결사로 나섰던 국민 영웅은 2013 WBC 이후 국가대표를 떠났다. 이승엽을 대신할 누군가 절실했다.
마지막일 것 같은 기회는 찾아왔다. 7회초 1사 후 2루에는 동점 주자 이용규가 복통을 참고 홈을 노리고 있었다. 근성 넘치는 투혼이었다. 이젠 해결사가 필요했다.
이때 4번 타자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볼은 흘렸다. 2구째도 구속 148㎞의 낮은 속구. 하지만 이대호의 방망이는 거침없이 돌았다. 낮은 볼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타구는 좌측 펜스를 향해 쭉쭉 뻗어나갔고 그대로 펜스를 넘겼다. 2-1로 경기를 뒤집는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이었다.
그토록 그리던 결정적 한 방. 이날 경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이대호의 홈런이 터진 뒤 거짓말처럼 약속의 8회가 다시 찾아왔다. 8회 5득점 빅이닝을 만든 한국은 도미니카를 10-1로 뒤집는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새로운 대표팀의 맏형, 국민 영웅의 재림이었다.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 8회 결정적 2타점 2루타, 2006년 WBC 일본과 4강전 8회 역전 투런 홈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4강에서도 8회 역전 투런 홈런으로 금메달을 이끈 주역이었다.
이대호는 이번 대표팀 야수 중 최고참이다. 책임감이 큰데 오른 손바닥 부상까지 겹쳐 무거운 부담감까지 떠안았다. 하지만 이대호는 역시 이대호였다. 스스로 이겨냈다. 이승엽의 그 역할을 그가 해냈다.
이대호는 이승엽과 걸어온 길도 닮았다. 한국 무대를 평정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대호는 일본 진출 4년차인 올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등극하며 이승엽의 족적을 뛰어넘었다. 또 도전을 멈추지 않고 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장까지 던졌다.
해외파 야수가 모두 빠진 이번 대표팀. 이대호는 짐을 홀로 지며 외로운 해결사를 자청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빅보이’가 침묵하던 후배들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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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일본 훗카이도 삿포로시 삿포로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한국과 일본의 개막전 경기에 앞서 이승엽이 이대호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日 삿포로)=천정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