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日 도쿄) 이상철 기자] “오늘은 몇 점이 날까. 글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돔구장만 홈런이 없었지. 그런데 오늘은 터질 수 있을지, 그건 또 모르지.”
21일 프리미어12 결승 미국전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은 조심스러웠다. ‘모르쇠’였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스포츠이니, 뭐라 말하기가 그럴 터. 앞서 일본과 준결승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펼쳤다. 모두에게 충격적인 과정과 결과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결승이었다.
“해봐야 아는 거 아닌가.” 이날 김 감독의 이야기 가운데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같은 게 하나 더 있었다. 이기고 싶은 열망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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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가 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 미국전에서 4회 3점 홈런을 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한국이 미국에 설욕하고 우승할까, 화끈한 점수가 날까, 돔구장 첫 홈런이 터질까, 그리고 삼세번 김광현은 잘 던질 수 있을까. 그 궁금증은 아주 일찍 해소됐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1회부터 8회까지 ‘꿀벙어리’였다. 1안타에 그치며 침묵했다. 답답해 미칠 정도로. 그러나 그런 속 터짐은 이틀 뒤 없었다. 한국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4회까지 매 이닝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내며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시작하자마자 정근우(한화)와 이용규(한화), 둘이서 선취 득점을 뽑더니 4회를 빅이닝으로 만들며 7-0으로 크게 앞서갔다.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그토록 단단했던 미국의 마운드가 눈 녹듯이 무너졌다. 아주 빠른 시간에.
일본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도쿄돔에 시원한 홈런이 터졌다. 주인공은 박병호(넥센). 4회 2사 2,3루서 브룩스 파운더스의 실투(138km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았다. 타구는 도쿄돔 외야석 상단까지 날아갔다. 비거리 130m의 초대형 홈런. 그리고 사실상 미국의 추격 의지를 꺾는 쐐기 한방이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 연봉 협상 중인 박병호는 1285만달러의 몸값과 함께 ‘예비 메이저리거’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 앞에서.
‘원조 에이스’도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광현(SK)에게 더 이상 마(魔)의 5이닝은 없었다. 앞의 두 번은 성에 차지 않았다. 김광현은 버티지 못했으며, 팀도 모두 패했다.
김광현보다 장원준(두산)이 우승을 위한 카드라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김광현 카드를 고수했다. 믿음이었다. 그리고 김광현은 그 믿음에 보답했다.
5이닝 동안 탈삼진 5개를 잡으며 미국 타선을 꽁꽁 묶었다. 허를 찌르는 절묘한 볼 배합이었다. 오오타니 쇼헤이(닛폰햄) 같은 160km가 넘는 강속구가 아닐지라도 136km의 속구도 매우 위력적이었다. 실점은 제로(0). 기막힌 반전 속 명예회복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운 좋은 사나이다. 실력으로 만든 그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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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현은 21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 미국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5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마침내 에이스의 가치를 보여줬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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