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69)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크루이프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4일(한국시각) “암 투병을 해온 크루이프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의 별세 소식에 전 세계에서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퍼졌다.
언론들은 일제히 크루이프가 활약했던 순간들을 재조명하며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고, 네덜란드축구대표팀은 26일 치러지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평가전에서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
축구계 구단과 선수들은 SNS를 통해 애도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
FC 바르셀로나는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경의를 표했고, 후안 마타는 “천재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할 것이다“고 애도했다.
◇ 축구 천재의 업적
1964년 아약스(네덜란드)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크루이프는 70년대 초 아약스를 최고 전성기로 이끌었다.
아약스는 1972년 국내리그인 에레데비지에, KNVB컵, 유러피언컵(유럽챔피언스리그 전신)을 석권해 트레블을 이뤘고, UEFA슈퍼컵과 인터컨티넨털컵(클럽월드컵 전신) 우승으로 5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1973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그는 팀을 리그 우승에 올렸다.
78년에는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데 기여하지만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81년 다시 아약스로 돌아온 그는 83~84시즌 페예노르트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 ‘토탈 사커’창시자· ‘크루이프 턴’
크루이프가 축구계 영웅으로 불리는 이유는 ‘토털 사커’의 창시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창안한 토털 사커는 수비, MF, 공격 등 고정적인 포지션의 개념에서 탈피해 전원공격, 전원수비 개념을 바탕으로 한 혁명적인 시스템을 말한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발탁돼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당시 그의 팀은 토털축구를 구사해 전세계 축구계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크루이프 턴’ 개인기를 선보여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 선수에서 감독으로
크루이프는 36세에 은퇴한 뒤 아약스 유소년팀을 맡았다. 당시 로날드 데부어, 프랑크 데부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시도로프 등을 길러내면서 미헬스 감독의 토탈 사커를 이어나갔다.
이후 그는 1
[디지털뉴스국 김예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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