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1년 사이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 엔트리는 큰 폭으로 바뀌었다. 2년 연속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건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을 비롯해 15명. 55.6%의 비율로 절반 가까이가 ‘다른 얼굴’이다. 그 중에는 ‘새 얼굴’도 있다.
가장 변화가 큰 건 투수. 장원삼, 차우찬, 백정현, 권오준, 박근홍 등 5명만 ‘그대로’다. 도박 스캔들의 중심이란 점이 컸는데, 불펜의 변화가 눈에 확 띈다. 김동호, 임현준, 장필준은 생애 첫 개막 엔트리 진입.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이름은 김동호. 1985년생으로 31세의 늦은 나이에 꿈을 이뤘다.
김동호는 “마음속으로 어쩌면 내가 포함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막상 내 이름이 포함돼 있으니 엄청 기쁘면서 스스로 신기했다. 지금껏 야구를 잘 해왔던 것도 아니다. 참 많이 돌고 돈 야구인생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을까’라며 그 길었던 옛 과정이 생각나더라”라고 밝혔다.
그의 말따나마 ‘거친 삶’을 살아왔다. 1군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날까지 꽤 먼 길이었다. 결코 평탄치 않았다. 대구고, 영남대를 거친 그에게 손짓한 프로구단은 없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불펜 포수였던 그는 한화 이글스의 육성선수로 기회가 찾아왔지만 방출됐다. 아이티 파병으로 현역 군 복무까지 한 그는 야구공을 놓지 않았다. 고양 원더스를 거쳐 2014년 삼성의 유니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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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김동호는 지난 1일 KBO리그 대구 두산전에 9회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는 31세 투수의 1군 데뷔전 성적표였다. 사진(대구)=김영구 기자 |
김동호는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한 차례 등판했으나 5명의 타자를 상대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안타 4개와 볼넷 1개를 내주고 4실점을 했다. 지난해 준비과정도 괜찮았는데 오른 어깨와 팔꿈치가 아팠다. 1군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그는 고통을 참고 공을 던졌다. 하지만 부상 정도는 심각했다. 탈이 났다. 그는 결국 야구장에 있지 않았다. 반년 넘게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김동호는 “지난해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성적도 괜찮아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팔꿈치와 어깨가 안 좋았다. 조금 아픈 정도가 아니다. 시범경기일지라도 1군 무대에서 던지고 싶었는데, 아프니까 방법이 없더라”라며 씁쓸했던 옛 기억을 회상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다시 건강한 몸을 만들면서 김동호는 한 단계 성장했고 또한 성숙했다. 스프링캠프 동안 “올해는 되겠다”라며 긍정적인 이야기로 힘을 실어준 이승엽의 조언은 그에게 큰 힘이기도 했다.
김동호는 “사실 재활을 하면서 공허함이 너무 컸다. 잘 될 줄 알았는데 또 안 풀렸다. 그러다 치료를 마친 지난해 10월부터 새벽기도를 매일 한 뒤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그 동안 마운드에 오르면 스스로 불안하고 두려웠다. ‘내가 잘 던질 수 있을까’라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스레 좋은 결과가 이어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김동호는 괌에 이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생존했다. 연습경기에 네 차례 등판해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했다. 눈도장을 찍은 그는 시범경기에서 더 빼어난 피칭을 펼쳤다. 6경기 7⅓이닝 2실점(비자책)으로 평균자책점 0이었다. 그런 그가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김동호는 참 늦게 1군 무대를 경험했다. 지난 1일 두산 베어스와 KBO리그 개막전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1군 데뷔 과정은 속도감이 붙었다. 7회부터 몸을 풀던 김동호는 9회 출전 지시를 받았다.
떨리지 않았을까. 그는 마운드 위에 서서 주문을 외우듯 성경 구절(빌립포서 4장 13절)을 되새겼다. 그리고 1이닝 1탈삼진 무실점. 속구(4), 슬라이더(6), 싱커(8)를 고르게 던졌다. 최고 구속은 145km.
그토록 하고 싶던 1군 데뷔였다. 그리고 꽤 괜찮은 결과였다. 그 감동적인 순간, 주위에서 축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불펜포수 변선웅은 중학교 시절부터 김동호의 절친이다. 김동호의 야구인생을 누구보다 잘 안다. 변선웅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다. 이를 잘 알기에 1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데 뭉클하더라. 내가 울 뻔 했다”라며 기뻐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덤덤한 반응이다. 이 순간을 위해 그 먼 길을 돌아왔건만. 생각의 전환이다. 더 이상 그 꿈에 목매이지 않았다. 그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다. 어디에서 공을 던지든.
김동호는 “1군 소감? 솔직히 별 다를 게 없다. 라이온즈파크 등판도 시범경기에서 해봤던 터라, 딱히 느낌은 없었다. 물론, 예전에는 1군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런 의미를 부여하면 (나쁜)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도 하던 대로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위에서 칭찬해줬지만, 나는 불만족스럽다. 내가 원하는 곳에 보다 더 완벽하게 공을 던져야 했다. 더 잘 던질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라고 했다. 데뷔전 18구 중 스트라이크는 11개였다.
김동호는 1군 2번째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마음가짐은 개막 전과 다르지 않다. ‘다음에는 더 잘 하자’고. 그의 말대로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다. 더 잘 할 수 있기에.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의욕도 넘친다. 김동호는 “개인 기록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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