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10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남자 펜싱 에페 결승전 마지막 3회전을 앞둔 박상영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혼잣말로 ‘할 수 있다’고 되뇌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했다.
그 시간 기도를 하기 위해 진주 인근 사찰을 찾은 어머니는 차마 경기를 볼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상대는 42살의 백전 노장, 제자 임레. 박상영은 자신보다 신장이 7cm 크고 작년 세계선수권 챔피언에 빛나는 유럽 최고의 검객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반면 경기장을 가득채운 유럽 관중들은 물론 박상영을 지도한 코치·감독들 조차 이후의 시간을 가비지타임(Garbage Time·승패가 기울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기 막판)으로 여겼다. 몸 전체 공격이 가능하고 동시 점수도 인정하는 에페 특성상 막판 4점 차이는 극복하기 불가능한 점수 차다.
게다가 상대는 박상영에 대한 분석도 마친 듯했다. 박상영은 결승전을 떠올리며 4강전 스위스의 벤야민 슈테펜에게 구사했던 ‘플레쉬’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플레쉬는 불어로 ‘화살’이란 뜻으로 몸을 앞으로 날리면서 뛰어드는 기술을 말한다.
마지막 3회전이 시작되자마자 점수는 어느 순간 14대 10이 됐다. 1점만 뺏기면 그대로 경기는 끝나는 상황.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제자 임레는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듯 다소 조급했고 공격적으로 나왔다. 박상영은 그 틈을 노렸다. 임레의 어깨를 검으로 툭 쳐서 점수를 땄다. 이어 또 다시 매서운 칼날을 겨눈 상대의 허리를 툭 쳤다. 모두가 숨죽인 긴장된 순간에 박상영 홀로 몸에 힘을 뺀 ‘허허실실’ 검법으로 다섯 점을 연속으로 따냈다. 올림픽 펜싱 역사상 기적같은 15대14의 역전승이 그의 이름처럼 전세계에 ‘상영’된 셈이다.
경기를 지켜 보던 스님들이 금메달을 땄다며 환호 소리를 내자 그제야 어머니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박상영의 금메달은 에페 선수로서 평균 이하의 신장(177cm), 계속된 무릎 부상, 부족한 실전 경험 등의 불리함을 극복한 놀라운 쾌거다. 박상영은 “전략은 없었고 올림픽을 즐겁게 즐겼다”고 밝혔지만 그의 미소 속에는 불같은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박상영은 “경기 전 상대방을 없애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에페는 본래 유럽 귀족들이 목숨을 걸고 한 결투에서 유래했다.
주변에서 말릴 정도의 치열한 연습과 부모의 뒷바라지는 그를 부상과 슬럼프에서 건져낸 원동력이다.
그가 펜싱에 입문한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 최명선씨는 기를 쓰고 말렸다고 한다. 공부를 곧잘 하던 그에게 운동을 시킬 순 없었다. 그러다 그의 연습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들의 얼굴을 발견한다. 훈련장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즐겁게 연습하는 모습이었다.
가정형편상 경제적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은 늘 어머니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박상영이 올림픽을 앞두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전국 사찰을 돌기 시작했다. 매일 108배를 하며 아들의 건강을 기원했고 ‘펜싱 선수 박상영 리우올림픽 파이팅’이란 기도 내용을 매번 기왓장에 적었다. 전국 유명 사찰 기왓장에서 이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어머니 최씨의 소원은 아들이 14일 단체전을 끝내고 진주에서 맛난 음식을 사주는 것 뿐이다.
아버지의 눈물겨운 편지도 그를 붙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3월
[리우데자네이루 = 조효성 기자 / 서울 =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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