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유행도 한철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트렌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미국의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은 트렌드와 일시적인 유행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시적 유행이란 시작은 화려하지만 곧 스러져버리는 것으로서, 순식간에 돈을 벌고 도망가기 위한 민첩한 속임수와 같은 것이다. 트렌드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이끄는 원동력에 관한 것이라, 크고 광범위하고, 바위처럼 꿋꿋하다. 그리고 평균 10년 이상 지속된다.
이제 36번째 시즌을 맞은 프로야구에서도 유행과 트렌드를 관찰할 수 있다. 36년 동안 진행되어오면서 팀 수는 늘어났고, 그에 따른 제도 변화가 수없이 일어났다. 야구의 모습도 그 때 그 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랫동안 비슷한 야구를 대다수의 팀이 펼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한국 프로야구는 뛰는 야구가 대세였다. 또 허리와 마무리를 튼튼하게 다지며 뒷문을 굳게 잠그는 야구를 하는 팀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런 트렌드가 대세라고는 할 수 없다.
트렌드를 통해서 야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KBO리그는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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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시즌 SK와이번스의 홈런 페이스는 무섭다. 52경기를 치른 1일까지 88개의 팀 홈런을 기록했다. 1번부터 9번까지 두자릿수 홈런을 때릴 수 있는 타자로 타순을 꾸릴 수 있는 유일한 팀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진=김재현 기자 |
2000년대 중후반부터 흔히 ‘발야구’라고 불리는 뛰는 야구가 유행처럼 번지며 리그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07년부터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산 베어스와 SK와이번스가 이런 뛰는 야구를 주도한 팀이다. 당시 두산은 이종욱(현 NC) 고영민(현 kt 코치) 등 테이블세터는 물론, 타선 전체가 공격적인 주루를 펼쳤다. 단타에도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장면에서 두산의 팀 컬러인 ‘허슬두’와 맞아떨어졌고, 두산 육상부라는 새로운 별칭도 얻게 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6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우승 3차례, 준우승 3차례를 차지, 왕조를 구축했던 SK도 뛰는 야구와 세밀한 작전을 앞세웠다. 결국 뛰는 야구는 들불이 번지듯, 리그 전체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됐다. 2006년 8개 구단의 총 도루숫자는 745개였지만, 2007년 764개로 소폭 늘었다. 그러다 2008년 987개로 대폭 상승했다. 2009년에는 1056개로 사상 최초로 1000도루를 돌파했고, 2010년 1113개로 정점을 찍었다. 2011년에는 933개로 하락했지만, 8구단 체제로 치러진 마지막 시즌은 2012년에는 1022개로 다시 1000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제 도루수는 줄고 있는 추세다. 10구단 체제로 치러진 2015년 리그 도루는 총 1202개였지만, 지난해 1058개로 줄었다. 올 시즌 초반에도 도루 시도부터 줄어드는 등 뛰는 야구와는 점점 거리가 먼 모습이다.
대신 치는 야구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2014시즌부터 도드라진 타고투저 현상과도 맞물린다. 2014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2명에서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확대하면서, 각 구단별로 외국인 타자가 등장한 것도 타고투저 현상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꼽힌다. 리그 타율은 지난 세시즌 0.280 이상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인 0.290까지 찍었다.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무려 40명이나 3할 타율을 넘어섰다. 그 사이 리그 팀 홈런도 1000홈런도 돌파했다. 리그 확대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수치가 너무 가파르다. NC가 처음 리그에 합류한 2013년에 리그 홈런은 798개였지만 이듬해 1162홈런으로 치솟았고, 10구단 체제 원년인 2015년에 1511홈런, 지난해에는 1483홈런이 나왔다. 올해도 거포군단 SK가 52경기를 치른 시점에 팀홈런 88개를 기록하는 등 모두 259경기에서 465개의 홈런이 나오고 있다. 물론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타고투저 현상은 완화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뛰는 야구보다는 치는 야구라는 트렌드에는 큰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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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삼성은 안지만-오승환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필승조를 앞세워 왕조를 구축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마운드에서 지난 10년 동안 트렌드에 변화가 있었다. 10년 전에는 지키는 야구가 주를 이뤘다. 선발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중간과 마무리를 구축해서 뒤를 잠그는 야구가 중시됐다. 확실한 필승조 구축이 각 팀 별로 시즌 개막 전까지의 과제였다. 왕조를 구축했던, SK는 당시 사령탑을 잡았던 김성근 감독 특유의 벌떼 불펜으로 재미를 봤다. 강한 불펜으로 왕조를 구축한 팀은 삼성 라이온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KBO리그에 전무후무한 4년 연속 통합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을 차지한 삼성은 안지만-오승환(현 세인트루이스)로 이뤄지는 확실한 필승조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이 부진했던 2009시즌에는 오승환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강한 선발 구축이다. 이는 지난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는 선발 4명(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이 각각 15승 이상씩을 거두면 판타스틱4라는 애칭을 얻었다. 한 팀에서 15승 이상 거둔 선발이 4명이 나온 경우는 사상 처음이었다. 이런 강력한 선발을 앞세운 두산은 정규시즌에서도 압도적인 성적(93승, 최다승 기록)을 거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4승 무패로 쉽게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두산의 영향으로 올 시즌 각 구단은 강력한 선발 구축이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KIA타이거즈는 헥터-팻 딘-양현종-임기영 등 4명의 선발이 제 몫을 해주고 있고, 최근 김진우까지 선발진에 가세, 안정적인 5선발 로테이션 돌리고 있다. LG트윈스는 FA로 좌완 차우찬을 영입, 허프-소사-류제국-차우찬으로 이뤄지는 선발진을 구축했다. 다만 허프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지만, 임찬규라는 새로운 선발이 등장해, 강력한 선발야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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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리그의 대세가 된 강한 선발의 원조인 두산 판타스틱4. 두산은 판타스틱4를 앞세워 지난해 21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사진=MK스포츠 DB |
이렇듯 야구에서 트렌드 변화는 필연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패션도 시대마다 트렌드가 달랐던 것처럼, 야구도 트렌드가 그 때 그 때마다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환경과 제도의 변화에 맞춘 필연적 결과라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리그 전체의 타선과 마운드 상황이 서로 영향을 받아서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시선도 있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올 시즌 들어 각 팀의 도루 시도가 줄어드는 대신, 직접 쳐서 해결하는 야구가 눈에 띈다”며 “한 두 점 차 리드를 지키는 야구가 힘들어지면서, 점수를 대량으로 낼 수 있는 장타를 노리는 야구가 트렌드로 자리잡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굳이 이런 현상을 트렌드로 바라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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