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게 몸 관리해요? 어떻게 현역 때랑 똑같아요?”
박지성을 보자마자 물었다. 선수 시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 심지어 더 말라 보였다. 보통 은퇴하면 살이 찌는 법인데…
“주변에서 살이 빠졌다고 해서 얼마 전 몸무게 재보니 1kg 줄긴 했어요. 공부가 힘들어서 그런가…”
질문을 할 ‘공간’이 생기자 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공부가 힘들어서 살이 안찌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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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만큼 힘들었던 공부
박지성은 FIFA 마스터 코스가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힘들었던 1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만큼 저한테는 버거웠는데, 그래도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박지성의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힘들었다? 지난 16년 간 박지성을 취재한 만큼 대충 감이 잡혔지만 힘들었던 다른 두 번의 기억을 굳이 물어봤다.
“글쎄 뭐 한번은 네덜란드 시기였던 것 같고요. 마지막 한번은 맨유 부상 때 인 것 같습니다.”
박지성 스스로 감옥에 있던 것 같았다고 묘사했던 네덜란드 진출 초기, 그리고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서 있던 맨유에서의 부상 시기. 공부가 정말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지성이 이수한 FIFA 마스터 코스는 축구 분야 석사 과정이다. 영국 레스터 드몽포르대(스포츠 인문학) 4개월, 이탈리아 밀라노대(스포츠 매니지전트) 3개월, 스위스 뇌샤텔대(스포츠 법률) 3개월 과정으로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영어 강의를 듣고 영어로 말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거기에 논문 작성과 발표까지. 저런 공부를 하고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힘들었던 공부. 하지만 선수생활 때는 몰랐던 부분을 알게 해줬고 스포츠 행정가로 꿈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됐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 당분간 유럽에서
은퇴한지 어느덧 3년. 공부도 어느 정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행정가 일을 시작할 때가 아닐까? FIFA 마스터 코스를 통과하면 보통 유럽의 스포츠 관련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한다. FIFA에서 일할 기회를 잡기도 한다. 기자의 ‘촉’인데 왠지 박지성은 유럽에서 행정가로의 첫발을 디딜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어디에서 근무하고 싶은지를.
“행정을 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필요하고 어떤 부분을 알아야하고 어떤 지식들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 기초적인 학문을 통해서 지식을 쌓았다면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것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단계를 앞두고 있고요. 클럽이 될 수도 있고 단체가 될 수도 있고 협회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다 있는 상황인데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는 유럽에서 좀 더 실무적인 경험을 쌓아서 좀 더 배우고 그게 제가 나중에 아시아나 한국에 돌아 왔을 때 필요한 경험을 쌓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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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지성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선수 박지성의 명성 때문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부담을 느끼진 않는가 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선수로는 깔 데가 없지만…’식의 댓글이 달릴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다.
“저에 대한 기대에 대해 부담감은 당연히 갖고 있고요. 하지만 그건 선수 때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 제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만족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결과가 안 좋게 나왔을 때는 그게 제 노력의 한계이고 그 이상은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못 한 부분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런 어떤 작은 실수나 실패들이 미래를 위해서는 좋은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부담이 없는 지 다시 물어봤다. 기자란 끝없이 의심하는 직업이니까.
“앞으로 제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고 또 뭔가 좌절도 겪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물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련은 없다
얼마 전 박찬호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은퇴 후 복귀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마운드에서 서고 싶고, 특히 후배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활약을 보면서 부러웠다는 것이다. 박지성도 그렇지 않을까? 혹시 손흥민의 활약을 보면서 뭔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게 없을까?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련은 없는 것 같아요. 마지막 시즌에 무릎이 아픈 것에 대한 인상이 너무나 크게 남아 있어서 다시 뛰고 싶다고 그렇게 자주 느끼지는 않고요. 다만 좋은 경기를 봤을 때 정말 아 저런 경기에서 내가 뛰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저런 경기에서 뛰면 이런 기분이었는데,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라는 느낌은 들지만 무릎 부상에 대한 기억이…”
‘너무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은퇴했다는 말. 더는 아픈 기억을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 “정환이 형은 끼가 있었어요.”
인터뷰가 조금 무겁게 흐르는 것 같아 살짝 분위기를 바꿔봤다. 축구기자로 취재를 하면서 가장 ‘쇼킹’했던 기억이 딱 두 개다. 첫째는 박지성이 교제 발표를 하면서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든 장면 (박지성을 취재해 본 기자라면 공개 석상에서 하트 날릴 사람이 전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과 안정환의 방송인 변신이다. 안정환과 친한 박지성에게 물어봤다. 선배의 변절(?)을…
“아니 뭐 정환이 형이 어느 정도 끼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아예 방송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고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형이 방송 일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은 그게 축구 쪽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축구를 떼고 형을 바라 볼 수 없기 때문에 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라는 단어를 인식시킬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축구에 좀 더 관심을 갖게 하는 그런 부분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형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만큼 어떻게 보면 그게 조금 더 긍정적으로 한국 축구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안정환과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위해 전면에 나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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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에서 입증하라”
물어보면 싫어할 것 같다. 하지만 안 물어볼 수가 없다. 기사를 쓰기에 앞서 내가 궁금하니까. 한 두 해 본 사이도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농담이긴 하지만 ‘빠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표선수들의 정신 상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고 콕 집어 말했다.
“그들은 이미 프로 선수이고 프로선수면 그만큼의 프로정신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프로 선수로 좋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대표팀에 올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프로정신을 대표팀에서 보여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대표팀이 너무 나태한 것 아니냐, 정신적으로 이전과 달라진 것 아니냐고 보는 시선이 있다면 분명히 선수 스스로가 찾아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를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경기장 안에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박지성식 발언이다. 만일 박지성이 지금 대표팀 주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분명히 위와 같이 얘기했을 것이다. 훈계도 아니고 격려도 아닌 난 너를 믿는데, 너의 가치를 나나 감독이 아닌 관중 앞에서 입증하라는… 곰곰이 생각하
박지성, 아니 박지성 이사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은 양복보다 붉은색 유니폼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선수 시절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간직하고 있는 박지성이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양복이 잘 어울리는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할 것으로 믿는다. 왜냐고? 박지성이니까. 전광열 기자 [revelg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