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매년 11월의 마지막 날, 보류선수 명단(팀당 최대 65명)이 공시된다. 해당 선수는 다음 시즌에도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공지다. 재계약 확정. 연봉 협상을 해야 하나 그래도 따뜻한 겨울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운 겨울이다. 보류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는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돈, 선수 등으로 보상을 해야 하는 FA와 다르게 자유계약선수는 이적하는데 제약이 없다. 필요한 선수와 계약만 하면 된다.
좋게 포장한 이야기다. 쉽게 말해 방출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야구선수의 삶을 이어가려면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한다. 쉽지 않다. KBO리그는 10개 팀 밖에 없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매우 좁다. 그 선택을 받기가 여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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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훈은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는 새 팀을 찾을 수 있을까. 사진=천정환 기자 |
지난 11월 30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8시즌 보류선수 명단을 공시했다. 명단에 포함된 선수는 총 538명이다. 임의탈퇴, FA 미계약자, 군 보류선수 등을 뺀 숫자다.
반면, 79명의 선수가 제외됐다. 외국인선수(11명)를 뺀 국내선수는 68명이다. 이승엽, 이호준, 박재상은 은퇴식까지 마쳤으며 정재훈, 최경철, 김정혁, 차일목, 정현석 등 일부 선수는 다른 야구인생의 길이 열렸다. 그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보류선수 명단 제외가 곧 선수 경력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한다. 2017시즌 보류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김승회(SK→두산), 김태완(한화→넥센), 김지성(LG→KIA), 최경철(LG→삼성), 최영진(두산→삼성) 등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1년 뒤 김승회는 FA 자격을 취득했다. 김태완, 김지성, 최영진도 이번에는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됐다.
자유계약선수의 이적은 새 팀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김승회의 경우, 한국시리즈 2연패에도 불펜 보강이 절실했던 두산에게 딱 맞는 조건이었다. 두산은 “정재훈의 부상 등으로 확실한 불펜 자원이 필요했다. 김승회는 이미 검증된 불펜 투수였다”라고 설명했다.
2016시즌 보류선수 명단 제외로 삼성을 떠난 임창용은 KIA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2017시즌 KIA의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최형우(KIA), 서건창(넥센)은 방출 뒤 더 단단해져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선례는 앞이 캄캄한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더욱 춥기만 하다. 걸어가야 할 재취업의 길이 좁아졌다. 국내선수 기준 보류선수 제외 명단은 68명으로 1년 전(40명)보다 28명이나 많다. 2년 전에도 53명이었다.
올해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베테랑뿐 아니라 20대 선수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KIA가 2명으로 가장 적을 뿐, 10개 팀은 저마다 규모를 줄였다. 넥센(외국인선수 포함 기준 12명), 두산, 삼성(이상 11명)은 방출 선수만 두 자릿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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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출 이후 야구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신인상, MVP, 골든글러브까지 싹쓸이 한 서건창은 최고의 성공 사례다. 사진=김영구 기자 |
넥센, 두산은 정식선수로 등록되지 않은 유망선수가 많은 팀이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게 두 구단의 입장이다. 이를 감안해 물갈이의 폭이 컸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정도 있다.
자유계약선수 영입은 전력 강화의 한 방법이다. 외국인선수, FA, 신인선수 등와 다르게 소규모 투자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KBO리그를 강타하고 있는 ‘리빌딩’ 바람이 그들을 춥게 만든다. 세대교체 바람도 강하게 분다.
자유계약선수 영입 시 해당 팀은 반드시 정식선수로 등록해야 한다. 기존 선수의 한 자리를 내줘야 하는 터라 부담이 따른다는 게 각 팀의 공통된 목소리다. 일찌감치 일부 팀은 자유계약선수 영입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A팀의 코칭스태프는 “보류선수 제외 명단 중 눈길이 가는 선수가 몇몇 있다. 그렇지만 섣부르게 영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팀에서 방출된 선수가 있다. 그 자리를 다른 팀 자유계약선수로 메우는 게 여의치 않다”라고 했다.
B팀의 관계자도 “올해는 (자유계약선수 영입에 대한 팀 방침이)확실히 예년과 다른 분위기다
출구가 없는 상황은 아닐 터다. 새 시즌을 구상하면서 여러 변수가 발생하며 추가 전력 강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몇몇 자유계약선수는 새 팀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확률이 예년보다는 크게 떨어졌다는 게 칼바람이 불기도 전에 피부에 와 닿고 있다. rok1954@gmail.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