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표현 중에 'Do a Bradbury’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성공을 거두다는 의미다. 이 표현을 만든 장본인은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라는 선수다.
당시 그는 세계 무대에 무명에 가까운 처지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호주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따낸 것 정도가 경력의 전부였다. 특히 직전 대회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500m에서 19위, 1000m에서 21위, 계주는 8위에 그치는 등 전 종목에서 예선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그는 이미 29세로, 쇼트트랙 선수로써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고 2년 전 당한 부상으로 기량 저하가 두드러졌다.
그런 그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맞붙어 예선에서 조 1위로 당당히 통과했다. 예선 통과만으로도 이변이라는 평가였다. 그런데 이런 이변은 2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2라운드에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캐나다의 마크 가뇽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아폴로 안톤 오노는 오심 논란 속에서 그 대회 1500m 금메달을, 마크 가뇽은 그 대회 500m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였다. 조 2위까지 준결승 진출권이 주어진 탓에 두 선수의 3라운드 진출이 확실해보였다. 실제로 브래드버리는 4명의 선수 중에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2위였던 마크 가뇽이 실격 처리되면서 브래드버리가 준결승에 진출한다.
3라운드에서 브래드버리는 전 대회 금메달리스트이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김동성 선수와 전 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중국의 리자쥔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그는 마지막 한 바퀴째까지 꼴찌로 처져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바퀴에서 김동성이 넘어져 순위권에서 멀어졌고 마지막 코너에서 리자쥔도 캐나다 선수와 충돌했다. 결국 5명의 선수 중 선두권 3명이 넘어진 덕분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5명이 금메달을 놓고 레이스를 펼치는 결승에서는 그는 한국의 안현수, 미국의 오노, 중국의 리자쥔, 캐나다의 마티유 투르콧 등과 맞붙게 됐다. 스타트부터 뒤로 처진 그는 확연한 속도 차이를 보이며 일찌감치 메달 싸움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결승선을 반바퀴 남겨두고 대이변이 시작됐다. 반바퀴를 앞두고 순위는 오노, 리자쥔, 안현수 순이었다. 리자쥔이 바깥쪽으로 오노를 추월하려 하자 오노가 리자쥔을 밀치면서 리자쥔이 가장 먼저 넘어진다. 이 기회를 노려 안현수가 인코스를 파고들다 이를 막으려던 오노의 팔에 걸려 넘어진다. 안현수가 넘어지면서 오노, 투르콧과 연쇄 충돌해 순식간에 4명의 선수가 빙판 위에 나뒹굴게 됐다. 결국 꼴찌로 들어오던 브래드버리가 아무런 경쟁자 없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게 된다. 이 금메달은 호주는 물론 동계스포츠 기반이 약한 남반구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브래드버리는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 다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라며 "이 금메달은 이번 경기를 이겨서 딴 게 아니고 지난 10년간 최선을 다한 나에게 주어진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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