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우리가 이겼습니까?”
파울루 벤투 감독이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우승컵을 든 뒤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 부산 시민은 ‘일본은 나쁘다’라고 외치면서도 한일전 결과를 전혀 몰랐다. 그는 생업으로 바쁜 데다 지상파 중계가 없어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새삼 놀랍지 않은 풍경이었다. 관심 부족은 이번 대회 내내 쉽게 엿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 |
↑ 동아시안컵(EAFF E-1 챔피언십)이 위상을 잃었다. 참가팀의 전력 약화로 대회 수준이 떨어졌다. 흥행 부진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진=김영구 기자 |
역대 79번째 한일전을 보러 3만명 가까운 팬이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 모였으며, 종합편성채널 ‘MBN’이 중계한 TV 시청률도 9%(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만 보는 경기였다.
6년 만에 국내에서 개최된 E-1 챔피언십은 흥행 참패를 겪었다. 남녀부 총 12경기에 관중 5만374명이 집계됐다. 경기당 평균 4198명으로 5000명도 안 됐다.
남자부 한일전(2만9252명)을 제외하면, 1만명이 모인 경기도 없었다. 2000명이 넘은 경기도 남자부 한중전(7916명) 정도였다. 비한국 경기 관심은 더욱 없었다. 최다 관중은 남자부 홍콩-중국전으로 1867명만 지켜봤다.
근본적으로 흥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12월에 축구장을 방문하는 건 꽤 혹독한 환경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칼바람이 몰아쳐 축구를 관전하기 힘들었다. 미세먼지까지 겹치며 외출을 자제했다.
유럽 진출이 빈번해지면서 스타 플레이어 부재도 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A매치 데이에 열리지 않아,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등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었다.
일본과 중국은 더욱 심각했다. 국내 축구팬이 알만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 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테스트’에 가까웠다. B팀으로 구성한 중국은 경기력까지 부진했다.
대회 권위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팬은 물론 참가팀도 동아시아 최강 팀에 큰 관심이 없다. ‘등용문’이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한 수준이다.
언론도 미지근한 반응이다. 일본, 중국 취재진 규모도 작아 기자석에도 빈자리가 많았다. 지상파가 굳이 중계권료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대회도 지상파 중계는 없었다.
‘메리트’도 없다. 상금 규모는 월드컵, 아시안컵에 비교가 안 된다. E-1 챔피언십 우승팀은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팀과 친선경기를 갖기로 합의했으나 이미 무산됐다. 그리고 정기적인 개최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E-1 챔피언십은 2003년 창설돼 2~3년마다 한·중·일이 돌아가며 개최하고 있으나 점점 퇴색하고 있다. 무용론에 대한 목소리도 충분히 나올 법하다.
변화가 불가피하다.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북한의 경쟁은 동아시아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다. 그렇다면 최상의 전력을 가동할 수 있도록 ‘무대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
↑ 동아시안컵(EAFF E-1 챔피언십)이 위상을 잃었다. 참가팀의 전력 약화로 대회 수준이 떨어졌다. 흥행 부진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진=김영구 기자 |
한국과 일본은 아시안컵 본선과 월드컵 예선에서 엇갈려 2012년 이후 E-1 챔피언십에서만 맞붙고 있다. 좀 더 한일전의 상품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대회 개최 시기도 문제다. 12월(2003·2017·2019년), 8월(2005·2015년) 2월(2008·2010년), 7월(2013년) 등 제각각이었다. 특정 시기에 정기적인 개최로 혼선을 줄여야 한다.
월드컵 혹은 아시안컵을 마친 뒤 첫 A매치 데이에 E-1 챔피언십을 개최하는 건 어떨까. 이 시기는 월드컵 예선 일정과 겹치지 않는다. 한국은 2018년 9월 코스타리카와 칠레를, 2019년 3월 볼리비아와 콜롬비아를 상대했다.
이 시기에 보통 두 차례 친선경기를 치르는 만큼, 대회 규모(일정)를 축소해 4개 팀이 토너먼트 방식(준결승전·3위 결정전·결승전)으로 우승팀을 가릴 수 있다. 손흥민, 이강인(발렌시아), 미나미노 다쿠미(리버풀),
진짜 자존심이 걸린 승부다. 부담감이 큰 만큼 박진감이 넘치고 승리의 쾌감도 클 것이다. 스폰서는 물론 동아시아 축구팬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E-1 챔피언십의 위상 제고와도 맞물린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